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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계시는 전환점이 된다. 삶을 변화시킨다. 교부들은 이런 전환점, 혹은 변동점을 트로파이온tropaion이라 불렀다. 이 말은 전환, 도망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트로페trope에서 유래했다. 트로파이온은 전쟁터에서 적들이 막 돌아서서 도주하기 시작한 지점에 땅에 박아놓은 기념물을 말한다. 대부분 나무 말뚝을 박고, 거기에 패패한 자들의 무기가 갑옷을 걸어놓은 형태였다. 이런 의미에서 십자가 사건은 살아있는 트로파이온이다. 그곳에 악의 무기가 매여있다. 의인의 몸에 못을 박는 뻔뻔한 냉소와 미움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곳은 적이 놀라서 전쟁터에서 도망가는 곳이기도 하다. 다음 구절로 대변되는 사랑의 힘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울림>, 마틴 슐레스케/유영미, 니케북스, 2022, 81)
☞ 트로파이온이 없는 삶은 밋밋하고 일차원에 머뭅니다. 매일 트로파이온이 지속된다면 불안한 상태에서 사는 것입니다. 트로파이온, 위기와 더불어 하느님께서 개입하시는 순간이 있고 이것을 기점으로 성장하고 확장되어 가는 삶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하느님만이 아시는 때에 새로운 트로파이온의 순간이 옵니다. 십자가 사건이 나에게 트로파이온이었던 때가 있었던가?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부터라도 자신의 신앙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평화와 더불어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불을 주셨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