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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교육자료/산과들과내 2021. 9. 24. 21:36
쓸데없는 생각. 이곳에 있는 거미나, 중국에 있는 거미나, 아프리카에 있는 거미나, 거미들은 거미집을 비슷한 모양으로 지을까? 똑같거나 비슷하게 집을 짓는다면, 누가 있어 혹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비슷하거나 같은 집을 지을까? 이곳에 있는 거미가 중국에 가서 집짓는 것을 알려주지도 않았을 것이고, 반대로 그곳에 있는 거미가 이곳으로 오지도 않았을 텐데. 거미집에도 단층집이 있고 복층집이 있다. 단층집을 짓는 거미 종류가 있고 복층집을 짓는 거미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사람들이 집을 짓는 것은 구경할 수 있듯이, 거미들이 집을 짓는 것도 구경하고 싶다. 설마 설계도를 갖고 집을 짓는 것은 아닐 것이고, 자기 마음대로 이 나뭇가지에서 저 나뭇가지로 옮겨다니며 얼기설기 짓는 것인가. 언제까지 저런 가옥 형태를 고집할 것인가. 거미집에 잡힌 곤충은 별로 없고, 곤충 아닌 나뭇잎이 더 많이 잡혔다.
숲에는 별의별 것들이 함께 모여 산다. 먹고 먹히면서, 도와주고 빼앗으면서, 의지하고 짓밟히면서.. 그 어떤 불평하는 소리도 없다. 고소하는 것도 고발하는 것도 없다. 말 그대로 현재 있는 모습 그래도 산다. 비가 오면 비를 맞는다. 비에 뿌리가 드러나고 나무가 통째로 쓸려 가기도 하지만, 그것 뿐이다. 그 자리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거나 그 자리에서 뭔가 새로운 것이 시작된다. 서두드리지도 않고 독촉하지도 않는다. 항상 지금의 상태, 현재 상태가 최상인 것처럼 보인다. 낙엽 질 때가 되면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낙엽으로 변화되고 떨어져 썩는다. 저마다 자기 때를 알아 그대로 따른다. 자연은 '때'를 알지만, 사람은 '때'를 모른다. 언제 나가야 하고 언제 물러서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자기 자리에서 미적거린다. 언제 강해야 하고 언제 한없이 약하게 해야 하는지 '때'를 모르기 때문에, 강함이 다른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것으로 되고, 유연함이 지나쳐 혼란을 자초하기도 한다.
자연의 그 어떤 것보다 우위에 있다는 사람들은 왜 '때'를 모르까? 어쩌면 사람들에게도 '때'를 아는 '촉'이 있었는데, 이 촉이 무뎌지고 어떤 것들로 덮혀 있어 '때'를 모르는 우둔한 사람으로 되었을지도. 코헬렛에서는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코헬 3,1)라고 말한다. 이 때를 알고 예견하고 그에 맞추어 자기 삶을 이끌고 나가는 사람, 복된 사람이다.
마음에 대해서 장황하게 말한 다음 "하느님께서 시작에서 종합까지 하시는 일을 인간은 깨닫지 못한다."(코헬 3,11)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