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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오동희 기도문기도.영성/똘레제 2021. 7. 11. 19:38
전라도 서망 들 동쪽 산 아랫마을 늙은 소작농의 아내가 동네 과부와 소박데기 몇 명을 모아놓고 천주교 경문을 외우고 십자가에 향을 피우다가 발각이 났다. 소작농의 아내 오동희는 달아났고 박가 성 가진 과부가 관아에 끌려갔다.... 달아난 오동희는 기도문을 직접 지어서 과부들에게 퍼뜨렸다. 오동희는 자신이 지은 기도문을 언문으로 종이에 적어서 나누어주었다. 오동희가 사라진 뒤에도 기도문은 금강을 건너서 충청, 경기까지 퍼져나갔다.
주여, 매맞아 죽은 우리 아비의 육신을 우리 아들이 거두옵니다.
주여, 당신이 십자가에서 죽었을 때 당신의 주검을 거두신 모친의 마음이 어떠했으리까.
하오니 주여, 우리를 매 맞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를 매맞아 죽지 않게 하옵소서.
주여, 우리를 굶어 죽지 않게 하소서.
주여, 우리 어미 아비 자식이 한데 모여 살게 하소서.
주여, 겁많은 우리를 주님의 나라로 부르지 마시고 우리들의 마을에 주님의 나라를 세우소서.
주여, 주를 배반한 자들을 모두 부르시고 거두시어 당신의 품에 안으소서.
주여, 우리 죄를 묻지 마옵시고 다만 사하여주소서.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흑산>, 김훈, 학고재, 2011, 58-59)☞ 소설은 소설입니다. 허구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현실과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럴법한 허구, 우리 삶과 깊은 관계가 있는 가공되어진 이야기라는 말입니다. 특히 역사소설은 역사적인 사실, '팩트'를 그대롤 전하는 것은 아니지만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면에서 '팩트'를 보완하고 있습니다. <흑산>은 우리나라 초기 천주교회사를 기술하거나 정치와 사회사를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대를 살았던 실존 인물들이 충분히 고민하고 고뇌하고 괴로워하고 가슴 아파했을 이야기들, 기록되어 있지 않아 사라져 버렸던 삶의 이야기를 개인의 마음속에 품고 있었을 이야기들을,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