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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매맞음기도.영성/다네이 글방 2021. 7. 9. 22:00
함께 묶여서 매를 맞을 때 형제들은 서로 매 맞는 소리와 신음을 들었지만 한마디도 말을 건넬 수는 없었다. 정약종은 팔다리를 주리틀리고 허벅지 사이를 줄톱질로 썰리면서도 고요한 침묵 속에 좌정했다... 나란히 묶여서 매를 맞을 때도 매는 혼자서 맞을 수밖에 없었다. 매는 공유되지 않았고 소통되지 않았다. 모든 매는 각자의 매였는데, 그랬기 때문에 매는 더욱 육신에 사무쳤다. 그 캄캄한 단절은 신의 부재 증명이었지만, 다시 캄캄하게 뒤집히는 고통이 생명을 증거하는 사태는 신의 존재증명인 듯도 했다. (<흑산>, 18)
☞ 재물은 나눌 수 있습니다. 물려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눌 수 없고 공유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자기 몸으로 체험했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도 없는 것이라고 부인할 수 없는, 자기 몸으로 체험한 것은 나누어 줄 수가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몸'을 지니고 있는 인간은 원천적으로 혼자일 수박에 없는 존재입니다. 더구나 자기 몸의 고통은 철저하게 자기자신을 소외시킵니다. 철저하게 자기 것이지만 철저하게 자기 자신이 아닌 고통으로, 인간은 소외되고 분열되고 파괴됩니다. 고통이 인간을 철저하게 무로 만들어 버립니다. 고통이 인간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몰아갑니다. 그런데 그 아무 것도 아님에서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고들 합니다. 삶과 생명의 아이러니이며 신비로움이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