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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생활글/생활 속에서 2021. 3. 27. 21:39
바쁜 하루였다. 봉사자들 3명과 함께 많은 일을 했다. 화단정리, 땅파기, 연산홍 옮겨심기, 가지치기, 계분 뿌리기, 폭설로 찢어진 소나무 가지자르기, 십자가의 길기도 정리와 청소, 은행 나무와 느티나무 심기, 야생화 씨앗뿌리기 등. 할 일이 더 있었으나 힘이 딸려서 더 할 수가 없었고, 그때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무심기 하면서 땅을 파면서 땅 색깔과 형태가 제각각임을 새롭게 의식했다. 보송보송한 땅이 있는가 하며, 물기 머금은 땅이 있고, 아주 작은 자갈과 같은 돌이 섞인 흙이 있고, 거무튀취한 색깔이 대부분이었지만 황금색과 연하게 붉은 색깔도 있었다.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나무과 크게 자라고 장수하는 나무여서 택했다. 남부지방에 비해 날싸기 춥기 하지만 비교적 따뜻한 동해안의 날씨를 믿으며 심기로 했다. 느티나무가 다섯 살이고, 은행나무가 세 살이기 때문에 나무 그늘에서 편히 쉴 수 있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4-50년 뒤 여름에는 누군가 나무 그늘에서 쉴 수 있을 것이고 가을에는 은행나무의 노란 단풍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 나무를 심으려고 한 이유는 수목장용 나무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따. 그런데 함께 사는 형제들이 이상하게 여길까보아 그 말은 하지 않았다. 수목장용 나무가 되었던 아니던, 매년 이곳에 오면 나를 반겨줄 나무가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든든하다. 언젠가 이곳을 떠날 것이고, 가끔 들리겠지만 그때마다 함께 이야기할 나무가 있다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다. 사람과 이야기하듯이 나무와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밤비 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낙숫물 소리가 들린다. 조용한 밤을 더 고요하고 적막하게 하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