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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나무 심기교육자료/산과들과내 2020. 8. 12. 21:34
옛날 부모들은 아이가 태어날 때 아이들 몫의 내나무를 심었습니다. 아들이라면 선산에 소나무와 잣나무를 심었고 딸이라면 밭두렁에 오동나무를 심었습니다. 아들 몫의 내나무는 아들이 늙어 죽을 때 관으로 쓸 송판으로, 딸의 내나무는 시집갈 때 필요한 농을 짤 나무였습니다.
이곳 산속에서 지내면서 그리고 숲교육을 받으면서 수목장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목장이라면 세상을 떠난 사람을 나무 옆에 묻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수목장과 관련된 법 조항이 어떤 것이 있는지는 아직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독일 사람이 쓴 숲과 관련된 책에서 약간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우리나라의 수목장에 대해서는 인터넷을 통해 사진을 구경한 것뿐이었습니다. 나무를 한 그루 심고 그 주변에 매장했다는 것 이외에는 땅에 매장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수목장 관련 정보와 사진들은 조잡하다는 인상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미사여구들이 많이 있었지만, 돈 벌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구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죽어서 나무 곁에 묻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과 별로 관련이 없는 것처럼 여겨져 씁쓰름했습니다.
내년 봄이 되면 내나무를 심으려고 합니다. 지금 생각나는 수종으로는 참나무 중에서 한 종류, 주목 한 그루, 은행나무 한 그루입니다. 내나무를 심는 목적은 수목장을 위해서입니다. 언젠가 죽기 전에 형제들에게 한 가지 유언만 하고 싶습니다. 죽은 다음에 화장을 한 다음 뼈는 소나무로 만든 상자에 담아서 내가 심어놓은 나무 중에서 살아남은 나무 밑에 묻어달라고. 내년 봄에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은 한 내나무를 심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무와 더불어 남은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그 나무가 크는 것을 보면서, 나이 들어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내가 돌아가야 할 장소를 마련했다는 든든함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내년에는 내나무 외에 나무를 한 그루 더 심을 것입니다. 어떤 수종으로 할 것인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이 근처에 살고 있는 분들의 의견을 들어 정하면 될 것입니다. 다만 오래 살 수 있고 크게 자랄 수 있는 나무라면 좋겠습니다. 외국에 있는 오래된 수도원을 비교적 많이 방문했습니다. 대부분의 수도원에 아주 큰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 수도원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나무 그늘에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거나 휴식하고 있는 것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꼭 외국의 수도원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시골 마을 앞이나 한가운데 있는 큰 나무 아래서 사람들이 모이곤 합니다.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쉬게 하고 그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나무를 이곳에 심어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앞으로 몇십 년 혹은 몇 백 년 뒤에 이곳에서 살아가게 될 후배들과 이곳을 찾게 될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는 애덕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