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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이 요동 벌판에 들어서면서 한 말입니다.
"한바탕 통고하기 좋은 곳이로구나. 통곡할 만하다"했더니 정 진사가 "천지간에 이렇게 시야가 툭 터진 곳을 만나서는 별안간 통곡할 것을 생각하시니, 무슨 까닭입니까?"하고 묻기에 나는, "그렇긴 하나, 글쎄. 천고의 영웅들이 잘 울고, 미인들이 눈울을 많이 흘렸다고 하나, 기껏 소리 없는 눈물이 두어 줄기 옷깃에 굴러 떨어진 정도에 불과했지, 그 울음소리가 천지 사이에 울려 퍼지고 가득 차서 마치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와 같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네. 사람들은 단지 인간의 칠정 중에서 오로기 슬픔만이 울움을 유발한다고 알고 있지, 칠정이 모두 울음을 자아내는 줄은 모르고 있네. 기쁨이 극에 달하며 울음이 날 만하고, 분노가 극에 치밀면 울음이 날 만하며, 즐거움이 극에 이르면 울음이 날 만하고, 사랑이 극에 달하며 울음이 날 만하며, 미움이 극에 달하며 울음이 날 만하고, 욕심이 극에 달해도 울음이 날 만한 걸세. 막히고 억눌린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버리는 데에는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 더 빠른 방법이 없네. 통곡 소리는 천지간에 우레와 같아 지극한 감정에서 터져 나오고, 터져 나온 소리는 사리에 절실할 것이니 웃음소리와 뭐가 다르겠는가? 사람들이 태어나서 사정이나 형편이 이런 지극한 경우를 겪어 보지 못하고 칠정을 교묘하게 배치하여 슬픔에서 울음이 나온다고 짝을 맞추어 놓았다네. 그리하여 초상이 나서야 비로소 억지로 '아이고'하는 등의 소리를 질러대지. 그러나 정말 칠정에 느껴서 나오는 지극하고 진실한 통곡 소리는 천지 사이에 억누르고 참고 억제하여 감히 아무 장소에서나 터져 나오지 못하는 법이네." (「열하일기」 1, 139-140)
☞ 광야에서 외친 세례자 요한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광야에 살면서 요한은 자신에게 있는 오욕칠정을 모두 체험했을 것입니다. 지리적인 의미의 광야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광야를 만날 수 있습니다. 어떤 계기와 어떤 형태로든 자신에게 오욕칠정이 있다는 것을 통감하게 되었다면 그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그곳에서 소리 지르고 고함치고, 욕하고 삿대질 하고 저주하며, 울고 웃으며, 자신을 할퀴고 자신을 쓰다듬어 주고, 의심과 불신으로 괴로워하게 됩니다. 광야에서는 모든 것이 발가벗겨 집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알몸으로 서 있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부끄럽고 초라하고 비참한 시간입니다. 그렇지만 자기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고귀한 존재이고, 구원받을 수 있는 존재이고, 자기 삶 그 자체로 깊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광야로 간다는 것은 불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광야는 인간을 정화시키고 개조시키고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복된 용광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