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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리브리/시가 내게로 왔다 2020. 6. 23. 21:47
오전에 깡마른 국화꽃 웃자란 눈썹을 가위로 잘랐다
오후에는 지난여름 마루 끝에 다녀간 사슴벌레에게 엽서를 써서 보내고
고장 난 감나무를 고쳐주러 온 의원에게 감나무 그늘의 수리도 부탁하였다
추녀 끝으로 줄지어 스며드는 기러기 일흔세 마리까지 세다가 그만두었다
저녁이 부엌으로 사무치게 왔으나 불빛 죽이고 두어 가지 찬에다 밥을 먹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 안도현 -
☞ 보잘것없는 일, 대수로울 것 없는 일, 누가 해도 할 수 있는 일,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크게 어려움 없는 일. 살기 위해 하는 일의 대부분이 이렇습니다. 이런 소소한 일들에 대한 태도가 행복한 삶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큰 일을 쫓아다니며 할 것이 아니라 그저 매일 주어지는 작은 일에 감사하면서 사는 삶. 특별히 쓸 이야기도 없는 그저 그런 삶을 향내 나는 삶으로 만들어 가는 것, 놀라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