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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표 운동화리브리/시가 내게로 왔다 2020. 6. 17. 22:57
원주시민회관서 은행원에게
시집가던 날 언니는
스무 해 정성스레 가꾸던 뒤란 꽃밭의
다알리아처럼 눈이 부시게 고왔지요
서울로 돈 벌로 간 엄마 대신
초등학교 입학식 날 함께 갔던 언니는
시민회관 창틀에 매달려 눈물을 떨구던 내게
가을 운동회 날 꼭 오마고 약속했지만
단풍이 흐드러지고 청군 백군 깃발이 휘날려도
끝내, 다녀가지 못하고
인편에 보내준 기차교 운동화만
먼지를 뒤집어쓴 채 토닥토닥
집으로 돌아온 가을 운동회날
언니 따라 시집가버린
뒤란 꽃밭엔
금방 울음을 토할 것 같은
고추들만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지요
- 안현미 -
☞ 엄마같은 큰 누나. 마음씨가 참 고왔습니다. 큰 딸을 낳으려고 하던 날, 세째 누나와 나는 겁이나서 누나집을 도망쳐 집으로 와 버렸습니다. 완두콩이 한두 개 섞인 하얀 쌀밥을 해 준 둘째 누나. 서울로 간 매형 대신 아버지를 돌보다가 무엇 때문인지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곳보다 하늘이 편하다는 것을 일찍 알았던가 봅니다. 한글을 깨우쳐 준 셋째 누나. 남에게 지고 못살지만 다른 사람 돕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겁없이 용감했고 지금도 똑순이 처럼 삽니다. 엄마에게 덜미가 잡혀 도회지로 떠나지 못하고 시골에서 고생만 했던 넷째 누나. 두 살 차이 여서 만만했는지 가장 많이 싸웠습니다. 시집가던 날 울면서 집을 떠난 것만 기억납니다. 고향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가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서러웠을 것입니다. 어렸을 때에도 고생을 하며 자란 누나는 시집가서도 고생을 했습니다. 누님들이나 형님들을 통해 들은 것이 아니라, 그냥 알 수 있었습니다. 몇 일 전, 상복입은 누나를 홀로 남겨두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