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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역 4번 출구리브리/시가 내게로 왔다 2020. 6. 14. 21:47
딸애는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서 잔다
그애는 몸을 바꾸자고 하지만
내가 널 어떻게 낳았는데...
그냥 고향 여름 밤나무 그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바닥이 편하다
그럴 때 나는 아직 대지의 소작이다
내 조상은 수백년이나 소를 길렀는데
그애는 재벌이 운영하는 대학에서
한국의 대 유럽 경제정책을 공부하거나
일하는 것보다는 부리를 걸 배운다
그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우는 저를 업고
별하늘 아래서 불러준 노래나
내가 심은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알겠는가
그래도 어떤 날은 서울에 눈이 온다고 문자메세지가 온다
그러면 그거 다 애비가 만들어 보낸 거니 그리 알라고 한다
모든 아버지는 촌스럽다
나는 그전에 서울 가면 인사동 여관에서 잤다
그러나 지금은 딸애의 원룸에서 잔다
물론 거저는 아니다 자발적으로
아침에 숙박비 얼마를 낸다
나의 마지막 농사다
그리고 헤어지는 혜화역 4번 출구 앞에서
그애는 나를 안아준다 아빠 잘가
- 이상국 -
☞ 수많은 헤화역 4번 출구들이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 기억해야 할 것들을 떠오르게 하는 출구들입니다. 그것들이 독립적으로 떠돌아 다니기도 하고, 이것과 저것 사이에 다리가 놓아지기도 합니다. 그 어는 것도 소홀이 할 수가 없습니다. 소중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고, 삶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 것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만나고 헤어졌던 사람들도 그들만의 혜화역 4번 출구들과 함께 그들의 삶을 열어가고 만들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