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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리브리/시가 내게로 왔다 2020. 4. 22. 10:01
4월 22일, 수요일
백 년
백 년을 만날게요
십 년은 내가 다 줄게요
이십 년은 오로지 가늠할게요
삼십 년은 당신하고 다닐래요
사십 년은 당신을 위해 하늘을 살게요
오십 년은 그 하늘에 씨를 뿌릴게요
육십 년은 눈 녹여 술을 담글게요
칠십 년은 당신 이마에 자주 손을 올릴게요
팔십 년은 당신하고 눈이 멀게요
구십 년에 나도 조금 아플게요
백 년 지나고 백 년을 한 번이라 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당신을 보낼게요
- 이 병 률 -
☞ 백 년이 주어졌습니다. 십 년은 산과 하늘과 나무와 꽃과 내와 물고기와 더불어 철부지로 마음껏 자유로이 살겠습니다. 이십 년은 낯설고 외진 곳에 떨어진 꽃씨처럼, 왜 그곳에 떨어졌는지 모르지만 그 뜻이 밝혀지는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살겠습니다. 삼십 년은 다시 찾은 꿈을 위해, 그 꿈을 이루어가고 확인하면서 조심스레 살겠습니다. 사십 년은 떠나왔던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 함께 부대끼며 삶의 기쁨에 흠뻑 젖겠지만, 철저하게 홀로된 때가 있어도 그것을 타고 넘어 강하고 부드럽게 살겠습니다. 오십 년은 모든 것으로부터 초연하게 될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어도 실망하지 않겠나이다. 육십 년은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무엇인지 깊이 알아 이마에 손을 자주 얻어 주며 살겠나이다. 칠십 년은 손을 내밀고 발걸음을 의탁하며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며 시간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기쁨속에 살겠나이다. 팔십 년은 아파할 줄도 모르고 괴로워할 줄도 모르고 끌려가는 것에도 저항하지 않고 따라겠나이다. 구십 년은 어둠에서 보고 침묵에서 들으며 무뎌지고 헝클어진 몸으로 느끼지만 통나무되어 살겠습니다. 백 년은 다른 시간은 모르지만 언젠가 그리고 반드시 오게 되는 때, 백 년에 한 번 피고 사라는 선인장으로 되겠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