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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러움생활글/생활 속에서 2020. 3. 26. 11:56
3월 26일, 목요일
그다지 오래 된 이야기도 아닌데, 외적으로 변화되는 속도가 너무 빨라 아주 오래된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들이 많습니다. 우선, 그 중에서 하나.
시골길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며 가다가, 도로 한 가운데 세워진 경운기를 만났습니다. 경운기를 몰고 가시던 분이 길가 논에서 일하고 계시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습니다. 도로가 넓지 않는 시골길에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자동차와 경운기와 사람이 함께 다니는 길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이와 비슷한 광경을 볼 수 있겠지만, 예전과 많이 달라졌으리라 생각합니다. 경운기가 멈추어 있는 도로가 경운기만이 아니라 자동차를 위한 길임을 의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 시골에서 뿐이겠습니까? 도시에서도 똑같았습니다. 자동차가 대중화 되면서 많은 사람이 차를 몰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자동차 운행에 필요한 예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골목길에서나 가능했던 습관이 아직까지 몸에 배지 않았습니다. 뒤에서 빵빵거리고, 가슴이 출렁할 정도로 앞으로 차가 들어오고, 다른 사람이야 어찌 되었던 '마이 웨이'를 고집하며 많은 사람들의 발을 묶어 놓고...
사회관계를 촉진 시기는 sns의 사용방법도 똑같은 과정을 겪고 있다고 봅니다. 편리함과 신속함과 익명성이 주는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다 개인의 의견을 말하고 주장할 수 있는 거의 제한없는 공간이 주어졌습니다. 익명성이라는 것 때문에, 그곳에서 얼마든지 자기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노인으로 변신할 수 있고, 밖에 나가 전혀 활동할 수 없는 사람이 유명한 운동선수로 될 수도 있습니다. 자기 방과 마을이 삶의 전부였던 사람이 세상 곳곳을 누비며 다녔던 사람으로 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아닐지라도 많은 사람이 자기가 하고 있는 말을 듣고 있으리라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 공간에서만큼은 자기가 왕이고 지배자가될 수 있습니다. 이런 지배자에게 책임없이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고 헛된 찬탄을 드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두운 일들에 대한 소식을 접하면서 정신이 아찔해지는 때가 많습니다. 어린애 같은 어른들이 있습니다. 어린애로부터 빠져 나와 어른스럽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기 어렵습니다. 이미 어른이 다 되어버린 어린애가 있습니다. 웃자란 식물처럼 허약함이 그대로 드러나지만, 더 이상 교육과 가르침이 필요없는 아이들입니다. 어떤 사람을 상대로 이야기를 해야 할지 아리까리합니다.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가는 더 아리송하고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 설정하기도 힘이 듭니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살아있는 것은 항상 새롭게 태어나고 소멸하고 움직이고 변화합니다. 그것이 시간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새로운 문화가 나타납니다.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혼란과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 고통스런 시간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문화에 적응해 갑니다. 경운기와 자동차가 같은 길을 가지만 서로 불편해 하지 않습니다. 도시에서는 자동차의 편리함과 신속함과 안락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 누가 이렇게 해야 한다 혹은 그렇게 하면 안된다라고 말하고 가르치지 않아도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스스로 배우고 터특해 가는 것입니다. 지금 겪고 있는 시간과 우리가 지나고 있는 시대의 아픔과 혼란을 보면서, 이런 시간들이 모두 다 지나가리라고 낙관만 하고 있기에는 가슴이 답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