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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일, 금요일
(악과 불의와 부정과 부당함과 억울함에 대해서) 첫째는 처단보다는 용서가 더 근원적인 해결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처단이 흔히 개인 또는 그 개인의 소행에 국한되는 것인데 비하여 용서는 당사자의 완전한 감화 나아가서는 사회 구조 자체에 대한 안목을 갖게 해 준다고 믿습니다. 둘째는 신의 심판을 소위 역사의 심판, 민중의 심판보다는 더 원대하고 완벽하고 근원적인 것이라 믿습니다. 제 개인의 문제는 더큰 문제, 더 뼈아픈 사람들과 아픔속에 담금으로써 해결해 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신의 문제는 제게 있어서 항사 진리의 기분, 정의와 사랑의 실체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손잡고 더불어』- 신영복과의 대화, 돌베게, 2017, 55)
☞ 신앙인이 말하는 용서보다 비신앙인이 말하는 용서가 더 마음에 와 닿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구나 그 용서가 자신이 체험한 것일 때 설득력과 감화력이 뛰어납니다. 절대자 하느님의 도움없이 한 인간의 노력과 의지로 도달한 것이기 때문에 그러할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것을 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말하는 용서와 사랑의 실천은, 그것이 개인의 욕심없이 행해진 진실된 것이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큰 감화력을 주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더구나 자기의 고통과 아픔이 더 큰 아픔과 고통속에서만 해소된다는 관점과 용서에 대한 한 차원 높은 이해는 신앙인이 아니지만 신앙인과 전혀 다를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