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향가는 길생활글/생활 속에서 2019. 11. 30. 10:28
11월 30일, 토요일
지난 3월부터 1시간 침묵기도를 거의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몸과 함께 하는 것임을 절감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영적으로 주님과 하나됨을 체험하는 것과 더불어 육적으로 그분과 하나됨을 체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십자가의 고난, 고통받는 예수님, 십자가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살기를 바라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시간을 지내고 있을 뿐입니다. 스타밧 마떼르(stabat mater), 서 계시는 어머니. 십자가 곁에 십자가 밑에 서 계셨던 성모님입니다. 고통받는 성모님이라 하기도 합니다. 그분처럼 고통받음없이 어떻게 그분과 같아지겠습니까. 감상적인 것으로, 관념으로 고난회원이 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형님과 함께 섬진강 옆에 살고 있는 누나집에 갔습니다. 조카들도 와 있다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일을 핑계대며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을 햇살이었습니다. 기억과 기억속으로 들어갑니다. 가을 단풍으로 화려했던 강변과 겨울을 견뎌내고 얼굴을 내밀고 있는 작은 꽃들과 물안개가 환상적이었습니다. 겨울 바람을 뚫고 자전거를 탔던 기억이 나고요. 기억과 더불어 그때의 상황이 떠올랐습니다. 힘든 시간이었는지, 행복한 시간이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갈 때는 어린 시절로 되돌아 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이곳에 계시지 않는 분들이지만 한 번도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기다리고 있는 형님을 생각하며 서둘러 그분들 곁을 떠났습니다. 사람들이 떠나고 없는 몇 가구 안되는 마을의 초라한 모습이 내 모습처럼 다가왔습니다. 골목을 돌아나녀도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마을, 논과 밭에서 일하고 있는 분들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산과 들의 일부로 되어버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고향 가는 길, 가족이 있는 곳, 부모님이 누워 계신 곳에 다녀오는 날은 항상 마음이 가라 앉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