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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원고글/빠씨오 2009. 10. 12. 22:43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거의 25년 전에는 수도성소자 모임에 함께 나가고 있었다. 내가 수도생활을 시작하겠다라고 결정을 하고 신학교에 들어갔을 때 나에게 하는 말이 "너의 용기가 부럽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기는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싶지만 겁이 나서 뛰어내리지 못하고 주춤거리고 있는 사람과 같다라는 말을 했다.
'내가 용기가 있는 사람인가'라고 생각해 보았지만 그렇게 생각되지 않았다. 단지 수도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생각되었고, 그렇게 해야만 행복해 질 것 같았기 때문에 시작했던 것 뿐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성소, 거룩한 부르심'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여 내 마음과 주변에서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도 아니었다. 마음속에서는 복잡한 생각들이 일어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었고, 집에서도 정리해야만 할 일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그것들에 대해서 불평하거나 회피하려는 생각보다는 내가 헤쳐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들로 생각했다. 그때의 시간을 되돌아 보면 모든 일들이 강물이 흘러가듯 진행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내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이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었던 것과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다는 말을 가끔 듣는다.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분들에 대해 걱정하고 아쉬워하기 보다는 '용기가 대단하다'라는 생각과 더불어 그들의 용기를 부러워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자신의 길이 아니라 생각했을 때 지금까지의 것을 모두 버리고 떠나는 그분들을 보면서 친구가 나에게 했던 ‘용기가 대단해’라는 말을 기억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나는 수행의 길로 들어선 사람들은 '역마살'의 정도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당히 큰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그들이 어느 한 순간에 붙잡히거나 어느 한 곳에 뿌리를 내리면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고.
그런데 지금은?
어디론가 가고 싶고, 용기를 내어 떠나기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미적거리고 있다. 내가 떠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고, 이러한 삶을 통해서도 삶의 깊이를 더 할 수 있다라는 이러저러한 이유를 대고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떠남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무엇인가 털어 내 버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움켜쥐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이것이 아닌데’, ‘이렇게 살기 위해 수행의 길로 떠난 것이 아닌데’ 하면서도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힘도 떨어진다고 하는데 결단력과 용기도 함께 떨어져 버린 것 같다. 비움에 대한 두려움은 커지고 별것도 아닌 것에 집착하는 힘만 커진 것은 아니었을까?
떠남과 비움, 이것은 수행자의 기본자세 일 것이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사는 계절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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