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a invece il vostro parlare sì, sì; no, no; il di più viene dal maligno. (Mt 5,37)
"예" 할 것은 "예"라고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 하는 것, 쉬운 것 같지만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어린아이가 아니라 성인이라면 '예'라고 해야 할 때에 '아니요'라고 말했거나, '아니요'라고 말해야 할 때 '예'라고 말했던 경우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삶의 체험은 우리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최초의 인간이었던 아담과 에와에게도 있었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었던 이유를 에와에게 떠넘기고, 에와는 뱀에게 떠넘겼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아담과 에와 모두 "예, 제가 따먹었습니다." "배가 고팠습니다" 혹은 "먹어보고 싶은 호기심과 욕망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라고 할 것에 대해 '예'라고 말하지 않은 것입니다.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예' 혹은 '아니요'를 명확하고 단호하게 말한 다음, 자기가 감당해야 할 후폭풍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자기가 하고 싶은 말과 상반되는 말을 합니다. 이렇게 해서 곤혹스럽고 난감한 상황을 은근슬쩍 넘어갑니다. 문제는 그렇게 말한 다음, 자기 마음속에서 분열되어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더불어 자기 모멸감과 수치심과 비하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상대방에 대해 수없이 많은 부정적인 말과 평가를 하면서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괴롭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살고 있는 나이든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서, 어떤 상황에서라도 반드시 '예'할 것은 '예'라고 해야 하고, '아니요'라고 할 것은 '아니요'라고 해야 한다고 강변할 자신이 없습니다. 다만, '예' 할 것에 대해 '아니요'라고 말했을 때, 혹은 '아니요'라고 해야 할 때에 '예'라고 말했을 때에,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만큼은 솔직하고 대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라고 한 다음에 숱하게 많은 '아니요'와 싸우면서 '예'라고 하게 될 때야 말고 진실된 '예'일 것입니다. 이것을 자기가 내적으로 정화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니요'라고 말한 다음 숱하게 많은 '예'를 반복하면서 '아니요'라는 말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 대해서는 정화라는 말보다 승화시키고 고양시키는 과정이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상황이든 자기 삶과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겸손한 사람이고 덕이 있는 사람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