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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겨울 고전-고백록기도.영성/다네이 글방 2022. 1. 26. 19:46
2022년 고전읽기
『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
두 번째 모임
2022년 1월 27일(목)/28일(금), 저녁 8시-9시 30분
성경 공부할 때 가장 기본적인 것이 성경과 관련된 지리에 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어디에 붙어 있고, 나자렛과 예루살렘이 어디 있는지 아는 것입니다. 에집트와 요르단이 어디에 있으며, 시나이 산과 홍해가 어디에 있는지 머릿속에 자리매김을 해 두는 것입니다. 『고백록』과 관련된 지리에 대해 알고 있으면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하는 것을 따라가기가 쉽습니다.
『고백록』과 관련된 지리
1) 지중해
- 지중해는 아주 이상한 바다입니다. 열린 바다가 아니라 닫힌 바다입니다. 지브롤터 해협(가장 폭 좁은 곳 14킬로미터, 넓은 곳 58킬로미터)만 대서양으로 열려있습니다. 물론 1869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면서 지중해와 홍해가 연결되긴 했습니다.
- 이 지중해를 중심으로 해서 서양의 문화가 태동됩니다. 서양 문화의 뿌리에 대해 말할 때,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을 언급합니다. 헤브라이즘은 예수님의 고향이고 나라였던 팔레스틴 지역을 중심으로 했던 문화입니다. 헬레니즘은 그리스를 중심으로 부흥했던 문화입니다. 610년 사우디 아라비아 메카에서 무함마드에서 시작된 이슬람교가 있고, 지중해 연안 지역을 거의 모두 점령합니다.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에 이슬람 문화가 뒤섞이게 됩니다.
2) 『고백록』과 관련된 지리
지중해 연안에 있는 유명한 나라에 대해서 볼까요? 에집트, 이스라엘, 시리아, 터키, 그리스, 크로아티아,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알제리, 튀니지 등입니다.
타가스테(수카 하라스, 알제리), 마다우로(알), 카르타고(튀니지), 알렉산드리아, 로마, 밀라노, 오스티아, 히포(알),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카르타고에서 오스티아를 거쳐 로마(40분) 밀라노로 갔을 것이다.
2. 5권-9권의 주요 내용
1) 제5권 마니교와 결별 (382-384년, 28세-30세)
3권에 열아홉 살 된 아우구스티누스가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를 읽고 참된 지혜를 찾고 얻는데 온 삶을 바치겠다라고 결심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더불어서 청년기에 들어선 아우구스티누스가 자기안에 애욕과 명예와 출세에 대한 욕망이 함께 있음을 뼈저리게 알게 됩니다. 자기 욕망을 충족하면서 쾌락적인 생활을 하면서 깊이 고뇌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욕망의 뿌리가 청년이었던 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청소년기 때 배를 훔쳤던 사건과 젖먹이 어린애의 시샘과 앙탈을 거쳐 인간의 몸과 내면 깊숙한 곳까지 다다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됩니다. 자기 마음속에 있는 두 가지의 강력한 힘 사이에서 고뇌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에 대해 이해하고 악의 뿌리에 대해 알고 싶었습니다. “하느님, 들어주십시오. 불행하여라. 인간들의 죄악.”(1권 7장 11절)
이런 상태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에 심취하게 되었습니다. 242년 페르시아에서 마니라는 사람이 창시한 마니교의 핵심 내용은 세상을 빛과 어둠, 정신과 물질, 선과 악이라는 이원론적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어둠과 악을 대표하는 사탄이 사람을 공격하여 인간은 악하게 되었다. 악한 인간이 다시 빛의 나라로 가고 선한 사람으로 되기 위해서는 엄격한 금욕 생활을 해야 한다. 세상에는 이런 금욕적인 생활을 통해서 빛의 나라에 살고 있는 선발된 거룩한 사람이 있으며, 이런 사람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선발자가 있고, 세상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경청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마니교 밖에는 죄인들이 있을 뿐입니다. 마니는 그리스도교 최후의 예언자이며 성령께서 자기에게 전위격적으로 현존한다는 주장을 했고, 조로아스터교에서 신성을 모독한다는 죄목으로 수감되어 277년 옥사했습니다. 이후 마니교의 가르침은 지중해 연안의 로마제국 곳곳에 퍼지게 되었다.
이런 마니교의 가르침 중에서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악은 우주의 실체다. 선한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고, 선한 신과 맞서는 반대원리에 해당한다. 인간도 두 영혼, 곧 선하고 악한 두 의지를 태어난다”는 마니교의 교리였을 것입니다. 이 교리에 따라 아우구스티누스는 자기의 욕망에 따라 지는 죄과를 자기안에 있는 악에로 돌려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에게는 죄를 짓는 것은 저희 자신이 아니고 뭔지 모르지만 우리 안에 있는 다른 본성이 죄를 짓는 것으로 보였고, 그래서 탓에서 벗어났다는 점이 오만을 부추기고 있었다.”(5권 10장 18절). 죄를 짓고 나서 “제가 했습니다”라고 통회할 필요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더불어 마니교의 교리는 철저하게 유물론적이었는데, “내 하느님에 관하여 생각하고 싶을 때에는 물체의 덩어리로 생각하는 길밖에 몰랐다. 내게는 그런 것이 아닌 무엇이 존재한다고 여겨지지 않았다.”(5권 10장 19절)
그렇지만 참된 지혜를 찾는 갈망하는 아우구스티누스를 마니교는 채워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마니교의 가르침 뿐 아니라 당대에 지중해 연안에 널리 퍼져 있었던 마니교와 다른 신플라톤 학파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수 있고, 확실한 어떤 것을 얻기 전에는 의심하고 회의해야 한다는 아카데미아의 회의론자들에 관한 이야기도 들었을 것입니다.
이런 아우구스티누스의 내적 상태에서 마니교의 제일인자라고 불리우고 있었던 파우스투스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이 궁금해 하고 있는 것에 대답하는 것을 보고 마니교는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니교를 떠나려는 결심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던 아카데미아 학파의 방식을 따라 만사를 의심하고 만사에서 흔들리는 가운데 나는 마니교도들을 떠나기로 결심하였다.”(5권 14장 25절)
2) 제6권과 7권 신플라톤 학파 만남 (32세-32세, 384년-386년)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를 거쳐 밀라노에 가서 황실학교의 수사학 교수로 생활하면서 그곳 지성인들을 사로잡고 있었던 신플라톤 사상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신플라톤학파란 플로티누스(205-270)가 플라톤의 이데아 설을 기반으로 발전시킨 철학사상입니다. 핵심적인 내용은 참된 실재이자 하나의 근원 일자(一者)있고, 이 일자로부터 지성(누스)과 영혼(프쉬케)이 유출되고(흘러나오고), 마지막으로 물질 세계인 현상계가 유출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만물의 근원인 일자에로 되돌아 가기 위해 자기 몸속에 담겨 있는 지성(누스)과 영혼(프쉬케)을 돌보아야 한다. 신플라톤 학파의 사상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작되었으나, 지중해 연안에 자리잡고 있는 도시, 아테네와 로마와 밀라노 등으로 퍼져나갔다. 신플라톤 학파는 단순한 철학사상이 아니라 종교생활과 윤리생활을 위한 기초를 놓는 것에로 발전되어 나갔다.
이런 신플라톤 사상을 접한 아우구스티누스는 당시 빠져있었던 회의론에서 벗어나 진리인식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마니교의 유물론에서 벗어나 영혼이나 천사 혹은 하느님이라는 정신적 존재가 존재할 수 있다고 수긍할 수 있게 됩니다. 그때까지도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던 악이란 선이 결핍된 것에 불과하다는 이론으로 선악 이원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계시 진리, 즉 하느님께서 사람의 몸을 취하여 오셨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왜냐면 신플라톤 사상에 따라 현상계에 속한 예수라는 사람이 하느님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진리를 찾고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성인은 그 당시 자신의 상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저런 책들에서 권유를 받고 나는 내자신 속으로 돌아왔고 당신의 이끄심으로 나의 내면으로 들어갔고... 들어가고 나서 나는 내 영혼의 어떤 눈으로 보았습니다. 내 영혼의 눈 바로 그 위에, 내 지성 위에 불변하는 빛을 보았습니다.”(7권 10장 16절)
내면에서 발견한 빛과 현실속에 있는 자신의 처지 사이의 괴리감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오, 영원한 진리여, 참된 사랑이여, 사랑스런 영원이여! 당신께서 내 하느님이시니 밤낮으로 당신을 향해 눈물짓습니다.”((7권 10장 16절) 이런 체험을 통해서 자기가 탐구하고자 하는 그 진리, 지혜가 자신과 너무도 멀리 있음을 자각하게 되고 자신의 노력만으로 그곳에 도달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고, 그곳에 이르려면 중개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점차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러니 비참한 인간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당신 은총이 아니면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그를 구해 주겠습니까?”(7권 21장 27절)라는 말씀을 이해하게 됩니다.
3) 8권 회심(32세, 386)
지적인 회심을 했지만, 그것을 교회로 들어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8권에는 자기 욕망에 따라 사는 삶과 진리를 추구하는 삶 사이에서 미적거리고 있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언제까지, 언제까지, 내일 또 내일입니까? 왜 지금은 아닙니까? 어째서 바로 이 시각에 저의 추접을 끝장내지 않으십니까?”(8권 12장 28절) 이런 미적거림과 방황을 거쳐, 저 유명한 밀라노 정원의 회심(386년 8월 초)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놀면서 “집어라 읽어라”라는 노랫소리를 듣고 성경을 아무 곳이나 펼쳐 봅니다. 그곳에서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속에서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로마 13, 13-14)라는 말씀을 듣고 주님께로 되돌아 가려는 마음을 굳히고 세례 받을 준비를 합니다.
4) 9권 세례와 어머니 모니카 (서른두 살, 386년)
아우구스티누스는 387년 부활성야(387년 4월 24일)때 자기 아들 아데오다투스와 고향 친구 알리피우스와 함께 세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9권 후반부는 어머니 모니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읽어나가는데 어렵지 않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들로 되어 있습니다.
9권의 중반부에 “그때는 즉위한 지 일 년 아니면 기껐해야 좀 더 되었을 뿐으로 어린 임금 발렌티누스의 모친 유스티나가 아리우스파들에게 미혹 당한 자기의 이단을 비호하느라 당신의 암브로시우스를 박해할 무렵입니다.”(9권 7장 15절)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아리우스파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것은 초기 그리스도교 교리사에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리우스파
그리스도교 교리에서 거의 언제나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신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보통 인간처럼 볼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과 같은 분으로 볼 것인가 였습니다. 아리우스 논쟁은 이런 예수님의 신원에 대한 종교적 차원과 정치적 차원의 이해와 관점이 치열하게 대립되었던 것입니다.
아리우스파는 알렉산드리아의 사제 아리우스를 중심으로 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 주장하는 핵심은 성부와 예수님이 동일한 본질과 위격이 아니라 차별적이고 이질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성부께서 예수님을 통해 세상을 창조하시고, 예수님이 하느님과 인간의 중재자이고 구원자인 것은 사실이나 하느님 피조물 중에 뛰어난 사람일 뿐이다’라는 것입니다. 당시 교회에서 믿고 받아들이고 선포하고 있었던 삼위일체 교리와 정면 배치되는 주장입니다. 종교.정치적인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성부와 성자는 동일한 본질”이라고 말하면서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규정했습니다. 이후에도 아리우스 파의 영향은 계속 남아있었고, 그것이 밀라노 교회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고백록의 내용은 4살 된 발렌티누스가 황제로 즉위하면서 어머니 유스티나가 섭정하게 되었고, 유시티나 성녀가 밀라노 포르치아나 성당을 아리우스파에 내어주라는 명령을 내리자, 암브로시오 주교과 신도들과 함께 포르치아노 성당에서 농성하고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언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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