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씀/생명의 말씀

예수를 찾는 사람들

leibi 2025. 6. 28. 13:32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루카 2, 48)  

예수님이 열두살 때, 요셉과 마리아와 예수는 예루살렘 순례 여행을 떠났다. 순례가 끝나고 나자렛으로 돌아가야 할 때에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에 그대로 머문다. 요셉과 마리아는 그것을 모르고 있다가, 하루가 지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예수를 찾아다니다가, 성전에 있는 예수를 보고 그의 어머니(성모)가 한 말이다.    

예수를 애타게 찾는 요셉과 마리아.

이들의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 예수를 애타게 찾고 있고 만나고 싶어하며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예수를 만난다는 것은 참사람을 만난다는 것이며 참자기를 만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여름 휴가철이 되면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참자기‘를 찾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여 체험하기도 한다. 참자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참자기를 만날 수 있는가. 많은 방법과 수단이 있겠지만, 그중에서 세 가지 것에 대해 말하고 싶다.

첫째, 자기가 하는 일을 통해서다. 참자기는 겉으로 드러나고 구체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는 자기가 하는 일을 통해서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 일할 뿐만 아니라, 자기를 실현해나가는 하나의 수단으로 일을 한다. 자기가 하는 일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그리고 일한다는 것은 시간과 정성을 쏟는다는 말이기 때문에, 자기가 어디에 시간을 쏟고 있으면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는가를  살핌으로써 지엽적인 자기 모습이 아니라 전체적이고 내면 깊숙한 곳의 자기 모습을 언뜻 볼 수 있게 된다.

둘째, 대화를 통해서다. 대화한다는 것은 타인이 있음을 전제한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만나게 되고 너를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더 깊게 알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대화는 외적인 것에 관한 것보다 각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 관한 이야기를 진실되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나와 너‘, 참인간이 어떤 존재여야 하는 지 알게 된다.

셋째, 자기를 성찰하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자기 자신을 펼쳐놓고 바라보는, 자기를 객관화 시키는 일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주관적인 자기 모습에만 함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자신에 대해 진실되이 바라보는 이 시간, 그 안에서 자기의 외적인 모습과 내적 모습, 강함과 약함, 빛과 그림자를 보게 되고, 이것들을 하나로 통합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일과 대화와 성찰. 우리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들이다. 그것을 통해 좀 더 깊은 차원의 우리 자신을 만나게 된다. 우리가 이런 일에 관심을 갖고 시간과 정성을 쏟는 것은 사람 중의 참사람이었던 예수를 찾고 만나고자 하는 열망이 우리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아니, 그 열망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바오로 사도께서 하신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는 것’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를 찾고 있었던 요셉과 마리아, 참자기를 찾고 싶어하고 진실되이 너를 만나고 너와 하나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원형처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