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씀/생명의 말씀

저는 죄인입니다

leibi 2025. 4. 23. 11:34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루카 5,8)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한 말입니다.

베드로는 무슨 죄를 지었을까? 무슨 죄를 짓고 혼자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가슴을 쳤을까? 갈릴래아 호숫가에 살면서 고기를 잡으며 그저 평범하게 살았던 그가 지은 죄는 무엇이었을까? 그가 깨달아 알게 된 죄는 무엇이었을까?

성경에서는 이 모든 질문에 함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각기 저마다 베드로가 지었을 법한 죄에 대해, 그가 깊고 새롭게 깨달았으리라 여겨지는 자신의 죄스러움에 대해 상상만 할 뿐입니다.  그가 어떤 죄를 지었고 무엇을 깨닫게 되었든,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온 말 ’나는 죄인이다’는 그의 삶의 전환점이 됩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던 자기의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고 인정하지 않을 때,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죽음학의 선구자라 불리는 퀴블러 로스가 말한 것처럼 자신의 죽음에 대한 부정과 반항과 타협과 협상을 거친 다음에, 죽음과 직면하고 있는 자기 현실을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받아들임, 수용, 인정함, 내맡김. 이것은 성경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젊은 마리아의 ‘피아트’가 그렇고, 청년 요셉이 그랬고, 겟세마니 동산의 예수님이 그러하셨고, 십자가의 예수님에게서 그 절정을 이룹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지금과 전혀 다른 차원의 시간과 공간이 열립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초월’은 현재와 전혀 관련없는 다른 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속에 있지만 우리 눈이 가려져 보이지 않고 귀가 멀어 들리지 않으며, 우리가 서 있을 수 있는 발판을 찾지 못한 그곳을 말하는 것입니다. 현실에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자신의 삶의 한 부분으로 여기면서, 현실을 넘어설 수 있는 은총을 구해야 하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