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bi
2025. 4. 5. 17:00
거미란 놈이 흉한 심보로 병원 뒤뜰 난간과 꽃밭 사이 사람 발이 잘 닿지 않는 곳에 그물을 쳐 놓았다. 옥외 요양을 받는 젊은 사나이가 누워서 치어다보기 바르게-
나비가 한 마리 꽃밭에 날아들다 그물에 걸리었다. 노오란 날개를 파득거려도 파득거려도 나비는 자꾸 감기우기만 한다. 거미가 쏜살같이 가더니 끝없는 끝없는 실을 뽑아 나비의 온몸을 감아 버린다. 사나이는 긴 한숨을 쉬었다.
나이보담 무수한 고생 끝에 때를 잃고 병을 얻은 이 사나이를 위로할 말이-거미줄을 헝클어 버리는 것밖에 위로의 말이 없었다. (윤동주)
*** “죽음의 오랏줄이 나를 두르고, 멸망의 급류가 나를 들이쳤으며, 저승의 오랏줄이 나를 휘감고, 죽음의 올가미가 나를 덮쳤네. 이 곤경 중에 나 주님을 불렀더니, 당신 성전에서 내 목소리 들으셨네.”(시 18,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