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bi 2025. 1. 21. 21:58

이곳 수도원 작은 도서관을 개인 서재처럼 사용하고 있다. 이곳에 사는사람들이 자주 들르지 않은다는 이유에서다. 이렇게 하면서 두 가지 마음을 갖게 된다. 공용 도서관을 개인이 혼자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어 미안한 마음과 개인 서재를 갖고 있는 것 같아 흡족한 마음이다. 매일 책을 읽고 일을 하기 위해 도서관에 들르면서, 서가에 도열해 있는 책들과 눈인사를 하는 일이 기분좋다.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들춰볼 때가 있다. 오래전 이곳에서 살 때 읽었지만, 다른 수도원으로 이동하면서 이곳 도서관에 두고 갔던 책들이다. 새로운 책인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고, 오래전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기도 하다.

“올바른 십자성호를 긋도록 하자. 천천히, 시원하게, 이마에서 가슴으로, 이 어깨에서 저 어깨로. 이렇게 하다 보면 온몸이 십자가의 표시와 하나가 됨을 느끼게 된다.” 오래전에 읽었던 로마노 과르디니가 쓴 <거룩한 표징>에 있는 내용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새롭게 와 닿는다. 알고 있는 말이지만, 정말 그렇게 해야겠구나라는 결심을 하게 하는 말이다. 신앙, 하느님과 관련된 일은 대부분 천천히 해야 할 일들이다. 천천히 성호를 긋고, 천천히 기도하고, 천천히 말하고, 천천히 예물봉헌을 하고, 성체를 천천히 배령하고, 천천히 기도문을 외고... 이렇게 하면서 입으로 소리내어 말하는 것이 온몸으로 스며들게 하고, 몸을 움직이는 것도 온몸이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물론 하느님의 말씀도 천천히 되새김질 하고, 음미하면서 그 말씀이 영혼을 살찌우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