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bi
2024. 12. 19. 23:11
하느님으로부터 무엇을 받았을까? 생명을 받았다는, 이미 입력된 답 외의 것이 있나?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던 적이 있나? 막혀있음. 자주 거대한 암벽을 만난다. 단절된 생각에 머물 수 밖에 없다. 뭔가 쓰면 쓸수록 더 견고해지는 벽을 만난다.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바위처럼 단단하다. 어떤 것에 대한 강박관념일까. 말해야한다는. 선포하고 고백할 것이 없는데, 말한다는 것은 고문이다. 위선적이기도 하다. 고해실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 저마다 홀로 외롭다. 살아있지만 심판받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변호하고, 심판하는 시간이다. 통회와 결심은 뒷전이다. 진실되이 쓰고 말한다면, 침묵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찬바람이 부는 도시 한복판을 걷는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옛날 같지 않는지 잘 모르지만, 많은 것이 변해버린 것은 사실이다. 걸음걸이가 느려지고, 다른 사람이 앞질러 간다. 아쉬울 것 하나없는데, 무엇때문에 머뭇거리는지. 항상 해야 할 말만 해야 하는 사람들의 괴로움이다. 어찌 그렇게 살 수 있을까. 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던가. 솔직하고 진솔하게 되기 위한다고 말하면서, 그와 아무 관련없이 살고 있다. 하느님, 당신을 부르나이다. 그 외의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나이다. 부르면 부를수록 감미롭지만, 빈소리처럼 여겨지는, 허공의 그림자를 잡으려는 듯한. 용두사미처럼 끝나버린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식물인간으로 4년을 누워있는 부인보다 먼저 죽으면 어떻하나를 걱정하는, 아흔 살 된 남자의 마음은 어떠할까. 이게 삶이고, 그 길을 따라 걸어가야 하는 사람이라는 게 무섭다. 새의 깃털처럼 가벼우면서, 철옹성같은 하느님이라는 이름. 생명을 위해 애걸해 보지도 않은 사람이 생명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나.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나. 마음속에 가득한 것이 무엇인가. 어떤 형체들이 떠돌아다닌다. 숨을 쉰다, 천천히. 위~잉 소리는 언제부터 들렸지, 태고적부터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