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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에서

leibi 2024. 12. 6. 09:16

여러 가지 기억이 겹쳐진다. 어렸을 때 강에서 멱감고 물고기 잡고 다슬기 잡았다. 누나의 손을 잡고 살얼음이 낀 강을 건너 5일장에 갔다. 아이들과 선생님들과 함께 모래무지 잡기 위해 줄을 서서 강바닥을 훑었다. 하루에 몇 번 지나는 기차를 보기 위해 소풍갔다. 신작로를 따라 하얀 먼지가 오르는 것을 보면서 마을로 버스가 들어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강변에서 모닥불을 피웠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소나기를 피해 어둠을 달려 학교로 갔다. 절벽을 휘감아 도는 강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있었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강 이쪽에서 반대편에 소리를 질러 배를 가지고 오라면 배를 가지고 왔다. 눈이 녹고 얼음이 녹고 물안개가 덮히고 산에 진달래가 핀 봄산을 보았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강에 댐이 생기고 수량이 적어지면서 물길이 바뀌었다. 주변 공장에서 흘려보낸 폐수로 강물과 주변이 오염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 기억이 이어진다. 갈대와 억새가 함께 있었던 길을 걷는다. 세멘트과 돌과 자갈로 강변이 정리되었고, 강물은 예전처럼 맑아졌다. 어둠속에 섰다. 온갖 일과 기억들이 순서없이 뒤엉킨다. 정겹고 맑고 투명한 강물소리가 들렸다. 별들이 보이고 초승달이 보였다. 강물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잤다. 잠을 설쳤던가. 댐으로 생긴 호수를 바라보았다. 호수 위와 건너편에 안개가 자욱했다. 짙은 안개속에 사물이 흐릿하게 보였다. 다시 길을 나섰다. 잃었다고 생각했던 길이 그대로 있었다.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고 말해주지도 않았는데, 떠나야 할 시간과 삶이 버거운 때를 알아 강으로 나가곤 했다. 흐르는 강을 따라 마을과 마을을 지나 바다로 갔고, 하늘에서 내려온 그 물을 따라 다시 바다를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