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bi
2024. 11. 16. 15:12
<희랍어 시간>, 한강, 문학동네, 2024
*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라고 자신의 묘비명을 써달라고 보르헤스는 유언했다. .. 그 한 줄의 문장은 고대 북구의 서사시에서 인용한 것이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한 침상에서 보낸 첫 밤이자 마지막 밤, 새벽이 올 때까지 두 사람 사이에 장검이 놓여 있었다. (7)
-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가장 가까이 있어야 할 사람 사이에, ‘서슬 퍼런’ 칼이 있었다는 말이다. 첫날 밤부터 있었으며 그들이 죽을 때까지 언제나 함께 했던 칼이다. 상대방이 얼마나 나와 다른 사람인지,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이들이 함께 살면서 대화와 소통을 통해 이해하고 일치하고 하나됨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불가능한 일일 수 있음을 말한다.
* 그녀는 마치 거대한 비눗방울 속에서 움직이듯 무게 없이 걸었다. 물 밑에서 수면 밖을 바라보는 것 같은 어른어른한 고요 속에. (16)
- 제대로 들을 수 없고, 볼 수 없을 때 세상은 뿌옇다. 나이가 들면,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흐려져 두 세계가 뒤엉켜 뿌옇게 된다. 생각도 맑고 투명하지 않고, 뿌옇게 된다.
* 비블리오떼끄. 혀와 목구멍보다 깊은 곳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17)
-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이 목소리를 찾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말.언어의 창고인 비블이오떼끄(도서관)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 말이 어떤 말이든. 그녀는 잃어버린 말을 되찾기 위해 고대 희랍어를 배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왜 하필 ‘죽어버린 고대 희랍어’인가. 삶에 대해 필사적으로 생각했던 고대 희랍인들처럼 되기 위해서. 아니면, 죽어있는 언어를 다시 살려내듯이 잃어버린 자기 언어 또한 다시 살려내고 싶은 바람때문에.
* 그 여름 나는 가족 몰래 독일어 수화교본을 사서 밤마다 문장들을 익혀하고 있었습니다. 책상 앞에 걸린 작은 거울에 내 모습을 비춰가며 한 시간쯤 수화를 연습하다보면 등이며 겨드랑이가 흠뻑 젖어 있곤 했습니다. 하지만 조금도 힘들거나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45)
- 시력을 잃어가고 있는 그 급박한 상황에서, 수화를 배우는 수고를 기꺼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때문이었다. 언어를 통하지 않고서는 내가 너에게 살 수 없으며, 너가 나에게 가까이 올 수도 없다.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비자를 발급받는 것이다. 새로 습득한 언어를 통해, 지금까지 나와 아무 관련 없었던 것들이 의미있는 것으로 다가오고 나와 그들 사이에 있었던 심연 위에 다리가 놓이는 것이다. 우리는 공통된 언어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나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언어습관이 있다. 특히 그 사람만의 고유한 언어를 배우지 않으면 아무리 대중이 쓰는 언어를 잘 구사한다고 하더라도, 나의 상대로 내 앞에 있는 사람의 언어를 배우지 않았다면 소통은 요원한 일일 뿐이다. 하느님과 대화하는 것이 기도라고 말하는데, 기도한다는 것은 그분이 사용하시는 언어에 친숙해지는 것과 같은 말이다.
* 말할 수 있었을 때, 그녀는 목소리가 작은 사람이었다. 성대가 발달하지 않았거나 폐활량이 문제였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공간을 차지하는 것을 싫어했다. 누구나 꼭 자신의 몸의 부피만큼 물리적인 공간을 점유할 수 있지만, 목소리는 훨씬 넓게 퍼진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넓게 퍼뜨리고 싶지 않았다. (51)
- 우리 시대의 소음은 자기 존재를 알리고 퍼뜨리려는 욕망때문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증폭되고 있다. 우리 삶과 몸속으로 밤낮없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요란한 광고음은 우리 욕망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아파트 대란은 조금이라도 넓은 공간을 확보하려는 인간의 탐욕이다. 전쟁의 목적은 공간(땅)을 더 많이 확보하려 무자비한 폭력이다. 자기 몸을 확대하고 자신의 이미지를 확산 시키려는 것을 어떻게 중단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한 시도 자체를 하지도 않겠지만, 어리석은 일로만 여겨진다. 자기 목소리를 높이고,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짓누르고, 다른 사람이 말 할 기회를 주지 않고 빼앗는 것이 아니라, 그런 욕구와 지향을 작게 하는 것이 가난한 마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시선만큼 즉각적이고 직관적인 접촉의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녀는 느꼈다. 접촉하지 않으면서 접촉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에 비하면 언어는 수십 배 육체적인 접촉이었다. 폐화 목구멍과 혀와 입술을 움직여, 공기를 흔들어 상대에게 날아간다. 혀가 마르고 침이 튀고 입술이 갈라진다. (55)
- 접촉없이 접촉하는 시선이다. 모르는 사람의 얼굴과 몸을 유심히 보는 것은 보는 것 이상이다. 그 사람의 몸과 접촉하는 것이기 때문에 타인의 바라봄이 불편한 것이다. 상대방의 동의와 허락과 관련없이 바라봄은 일방적이다. 상대방을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는 일이다. 반면 언어 ‘말함’은 자신의 모든 것이 관여하는 일이다. 자신의 몸뿐 아니라 자기의 속마음까지 깊이 관여하는 일이고,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 ‘말함’은 헛소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말하기 뿐 아니라 글쓰기도 똑같다.
* 자신의 목소리가 공간 속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처럼, 자신이 쓴 문장이 침묵 속에서 일으키는 소란 역시 견디기 어려웠다.(56)
- 자기 온존재로 쓰지 않는 글은 고요하고 평혼해야 할 침묵을 깨뜨리는 소음에 불과하다.
* 어떻게 그애를 데려갈 수 있지. 어떻게 그렇게 빨리. 어떻게 그렇게 오래. 나쁜 새끼.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 ... 말을 잃은 뒤 처음으로, 그날 밤 그녀는 거울 속의 자신을 곰곰이 들여다보았다. 잘못 보고 있는 것이라고 언어 없이 생각했다. 두 눈이 저렇게 고요할 수는 없다. ... 그렇게 끊없이 침묵하고 있었다. (62)
- 말을 잃어버린, 말이 단절된, 말이 소용없어진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고요와 적막, 어둠과 형체없음, 감각이 소용없는 세상일 것이며, 마음속 생각을 통해 얻어진 그 어떤 이미지도 없는 세상일 것이다. 이런 말이 소음의 원인일 뿐인 세상은 또 어떤 세상이어야 하는가.
* 세계는 환이고 산다는 건 꿈꾸는 것이다, 라고 그때 문득 중얼거려 보았다. 그러나 피가 흐르고 눈물이 솟는다. (71)
- 아름다운 꿈과 환상으로만 이루어진 세계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이 세상은 이데아로만 되어 있지 않고, 피가 흐르고 눈물이 있는 곳이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이데아만 있는 허무한 곳이 아니라, 피와 눈물이 함께 하는 곳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곳이라고 하는가?
* 인간의 몸은 슬픈 것이라는 걸. 오목한 곳, 부드러운 곳, 상처 입기 쉬운 곳으로 가득한 인간의 몸은. 팔뚝은, 겨드랑이는, 가슴은. 샅은. 누군가를 껴안도록, 껴안고 싶어지도록 태어난 그 몸은. (124)
- 누군가를 껴안으라고 만들어진 몸인데. 그 사이에 ‘서슬퍼런’ 칼이 있어 마음껏 껴안을 수 없는 인간. 누군가에게 껴안아지라고 만들어진 몸인데, 온전히 껴안기 전에 스러져버린 몸이어서. 인간의 몸은 슬프다.
* 그 쓸쓸한 몸은 이제 죽었니. 네 몸은 가끔 나를 기억했니. 내 몸은 지금 이 순간 네 몸을 기억해. 그 짧고 고통스러웠던 포옹을. 떨리던 네 손과 따스한 얼굴을. 눈에 고인 눈물을. (125)
* 어머니의 검은 입술을 물수건으로 축이며, 자신의 마른입에 생수병을 기울이며 그녀는 계속 속삭였다. 더이상 계속할 수 없다고 생각되면 더 빠르게 속삭였다. 마침내 그녀가 침묵했을 때 그 일은 일어났다. 새 같은 무엇인가가 문득 육체를 떠났고, 그 육체는 더 이상 어머니가 아니었다. 엄마, 어디로 갔어. (145)
- 내 몸은 언제까지 내 몸인가. 숨을쉬고 있는 동안만 내 몸이라고 할 수 있는가. 숨이 끊기고 피흐름이 멈추고 생각이 멈출 때까지만 내 몸이라고 할 수 있는가. 죽은이를 염할 때, 장의사는 그의 몸을 사물처럼 다룬다. 가족들은 그 사물을 보면서 울고 통곡하고, 붙잡으려는 손짓을 한다. 얼마 전까지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었던 사람, 다정한 눈길을 나누었던 사람이었는데. 몸에 스며들어 있었던 기억과 지식과 기쁨과 슬픔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 수천 구의 육체들이 뼈까지 깨끗이 삭아버린 거대한 무덤 속에, 그토록 따뜻한 몸을 가진 우리가 모여 있었다는 게. (155)
- 카타꼼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카타꼼베에서 나오면 죽음이 우리와 아무 관련없는 것으로 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곳 이자리에서 뼈가 온전히 사라져 버린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다. 따듯한 몸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눈물 흘리고 고통받으면서. 슬픈 아이러니인가, 이해할 수 없고 신비롭다고 말해야 하는가.
* 오래전에는 해가 진 직후와 해가 뜨기 직전의 어스름을 호...로 시작하는 한자어로 불렀다고 한다. 멀리서 오는 사람을 알아볼 수 없어, 큰 소리로 불러 누구인지 물어야 한다는 뜻의 단어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란 서양식 표현과 비슷한 연원을 가진 호...로 시작되는. (157)
- 랍비에게 언제 새벽이 오는가라고 물었을 때, 네 곁에 있는 사람이 너의 형제로 보일 때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것인가, 저것인가를 구별할 수 있는 경계선에서는 모든 게 뿌옇다. 그 잠깐의 뿌염을 통해서 구분할 수 있게 되는 시간으로 넘어간다. ‘대성고호’라는 사자성어를 말하는가? 아니면 호명?
*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꿈에서뿐이겠지요. (159)
- 말할 수 없는 사람의, 볼 수 없는 사람의, 냄새 맡을 수 없는 사람의,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의, 깨닫지 못한 사람의 바람과 갈망은 오직 꿈에서만 이루어진다.
* 자신이 말을 잃은 것이 어떤 특정한 경험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다. 셀 수 없는 혀와 펜 들로 수천 년 동안 너덜너덜해진 언어. 그녀 자신의 혀와 펜으로 평생 동안 너덜너덜하게 만든 언어. 하나의 문장을 시작하려 할 때마다 늙은 심장이 느껴진다. (165)
- 언어를 갈고 닦는다고하면서 언어를 파편으로 만드는 사람들. 자기 욕구와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 언어를 난도질하는 사람들. 이런 언어로 만들어진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 내 목소리가 퍼져나가는 공간의 침묵에 공포를 느껴요. 한번 퍼져나가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단어들. 나보다 많은 걸 알고 있는 단어들에 공포를 느껴요. (167)
- 침묵은 소리와 언어로써만 깨뜨려진다. 태초의 침묵을 깨뜨리는 언어가 두려운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 그는 긴 의자에 걸터앉는다. 두 손으로 의자를 더듬어, 여자가 홑이불과 담요를 한 켠에 개켜놓고 간 것을 안다. 간밤에 그가 서랍장에서 꺼내준 것들이다. 개켜진 이불 위로 그가 눕는다. (173)
- 사랑하는 사람의 온기와 체취를 느끼기 위해 그가 덮었을 홑이불과 담요 위에 눕는 사람. 떠난 사람을 떠나보내지 않기 위해 그의 흔적이 있는 물건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 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침묵이라면, 비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끝없이 긴 문장들인지도 모른다. (174)
- 눈 오는 날, 눈 내린 뒤의 고요함과 침묵을 알고 있다. 내리는 눈이 공기중의 먼지와 요란한 소음을 걷어내기 때문이리라.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문장은 저 아래 깊은 곳에서 솟아나오기도 하고, 하늘에서 주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 속에 캄캄한 칼집 속에 빛나는 칼, 오래 숨을 참으며 기다리는, 소스라치며 그는 눈을 뜬다. (179)
- 칼집 속의 어둠은 어둠이 아니다. 서슬 퍼렇고 빛나는 칼날을 품고 있기 때문에. 빛나는 칼을 품고 있지 않으면 칼집이 아니듯, 마음속에 반짝이는 말을 품고 있지 않으면 말씀이신 그분의 제자라 할 수 없다. 그분의 말씀이 칼처럼 벼려져 영혼에 간직되길 바라야 한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질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히브 4,12)
*** 촘촘하게 짜여져 있지만 잘 벼려지고 정화된 말, 세상의 침묵이 깨질까 봐 꼭 해야 할 말만 조심스레 이야기하고 있어, 말과 말 사이를 파고 들어 그곳에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어 가면서 세상에 대해 자기만의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게 하는 소설이다.작가 스스로 “삶을 살아내야 한다면, 인간이 어떤 지점을 바라볼 때 그것이 가능한가?”라고 질문하고 이에 대한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쓴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