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글/생활 속에서
비렁길
leibi
2024. 9. 16. 20:42
섬에 가고 싶었습니다. 섬이 육지에서 떨어져 홀로 있듯 홀로있음이 그리웠던 같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는 도시와 달리 자동차를 타고 배를 타고 가야하기 때문에, 가까이 있지만 먼 곳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섬. 먼곳으로 떠나고 싶었던 마음이 섬을 떠올리게 했을 것입니다. 그 가난한 바람을 이루어지게 해 주셨습니다. 원래는 걷기 좋아하는 세 사람이 함께 섬짐강을 걷기로 했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함께 할 수 없게 되자, 남은 두 사람이 섬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섬과 걷기,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할 수 있는 여수 앞에 있는 금오도에 가기로 했습니다. 그곳에 있는 ‘비렁길’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돌산도의 끝부분에 있는 신기항에서 바로 앞에 있는 섬이 금오도입니다. 배에 오르자마자 우리 두 사람은 바로 선실에 누었습니다. 앞으로 걸어야 할 산길을 위해 몸을 쉬게 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25분 뒤에 여천항에 도착했습니다. 바다 바람은 시원했지만, 땅의 열기는 한 여름과 똑같았습니다.
여천항에서 섬에서 가장 높은 매봉산을 거쳐 하루 저녁 묵을 함구미까지 가는 일정이었습니다. 초반부터 아주 급경사였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운동다운 운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가 체력 테스트하는 기회로 삼자고 말하면서 올라갔습니다. 5백미터 쯤 걸었을 때, 산등선에 설 수 있었습니다.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능선을 따라갔습니다. 숲길과 바위길이 반복되었습니다. 햇빛이 짱짱했지만 시원한 바다바람과 산 바람으로 덥지 않았습니다. 비취빛깔의 바다와 바다 한 가운데 점점이 떠있는 섬들이 보였습니다. 거의 6킬로미터 되는 산길이었지만, 걸을만했습니다. 두 시간 예상했는데, 30분이 더 걸렸습니다.
함구미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6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민박집 주인의 사정으로 간신히 저녁을 얻어 먹을 수 있었습니다. 어르신 몇 분이 마을회관에서 불을 끄고 집으로 돌아가시자, 이방인인 우리 외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마을처럼 조용했습니다. 에어컨 소리때문에 저녁 파도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에어컨을 끄고 모든 창을 열었을 때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고, 파도 소리도 들렸습니다.
아침은 서둘러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걷기 경험을 통해 비렁길 전 구간이 18킬로미터인데, 하루 18킬로미터라면 그다지 부담되는 거리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걷기 시작하여 30분 정도 되었을 때, 왜 비렁길이라고 했는지 알게 되었스빈다. ’비렁‘이 그곳 사투리로 ’벼랑‘이라는데, 바다와 맞닿아 있는 높은 벼랑(절벽)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한순간 눈과 가슴이 뻥 뚫렸습니다. 철로 된 난간이 없었다면 아래에 있는 바다를 내려다 볼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높은 벼랑이었습니다. 이런 높은 벼랑과 바다가 한데 어우러져 만든 웅장한 경치가 비렁길 전 구간에 걸쳐 수시로 나타났기 때문에 ’비렁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다를 옆에 두고 산길을 걷는 것이어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나무가 울창한 숲길이었습니다. 한낮인데도 어두컴컴한 곳이 많았습니다.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고, 길을 찾기 힘든 곳도 있었습니다. 이런 어둔 숲길을 빠져 나온가 싶었는데, 눈 앞에 파란 바다와 회색과 흰색 벼랑이 만들어내 멋진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 때도 있었습니다.
이런 숲길을 걸으면서 언젠가 읽었던 단테의 신곡 서두가 생각났습니다. “ 우리네 인생길 반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나는 어두운 숲 속에 있었다. 아, 거칠고 사납던 이 숲이 어떠했노라 말하기가 너무 힘겨워 생각만 하여도 몸서리쳐진다. ... 나 어찌 거기 들어섰는지 말 할 수 없다.” 어떤 시인이 ‘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저 어둡고 황홀한 숲‘이라고 말했다는 것도 기억났습니다. 단테가 말한 어둡고 거칠고 사나웠던 숲이든, 시인이 말한 어둡고 황홀한 숲이든, 비렁길에서 만난 어둔숲이든, 우리 삶에서 어둔 숲길이 나타나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 어둠의 시간을 견딜 수 있는 것은 비렁길에서처럼 숲길이 끝난 곳에 우리 가슴을 뛰게 하는 멋진 경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멋진 경치는 경치고, 힘든 것은 힘든 것이었습니다. 숲길을 걸을 때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서늘하기도 했지만, 바람이 불지 않으면 정말 더웠습니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쉴 때마다 바닷바람과 여름처럼 뜨거운 햇빛에 젖은 옷을 말렸습니다. 군데군데 마을이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그곳 마을에서 아이스크림이나 물을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없는 곳에서는 냉장고에서 우리가 원하는 물건을 가져오고 가게 한 켠에 적혀 있는 통장 계좌번호로 돈을 이체해 주면 되었습니다. 시골 마을을 여행할 때 가끔 볼 수 있는 새로운 풍속도였습니다.
비렁길 4코스와 마지막 5코스를 걸으면서 비렁릭 18킬로미터가 예전의 18킬로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평지가 아니라 산길을 걸었기 때문이고, 코로나 이후 장거리를 걷지 않았기 때문이며, 몇년 전 걸을 때보다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고, 날씨도 가을 날씨가 아니라 한 여름날씨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9월에 폭염주의보를 내릴 정도로 더운 날씨였다는 것은 그날 저녁 민박집에서 뉴스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비렁길 마지막 5코스를 다 걸어 산길을 빠져 나왔을 때, 멀리 하루 묵기로 결정한 안도가 보였고, 금오도와 안도를 연결하는 안도 대교가 보였다.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피로하고 지친 몸을 위해 단것이 먹고 싶었다. 그때 무화과 농장이 나타났고, 무화과를 상자에 담고 있는 아주머니가 보였다. 우리 두 사람을 보면서 “이거 먹어보세요”하면 무화과를 주셨다. 야훼 이레.
안도대교를 건너며 후배 신부에게 물었습니다. “체력 측정 결과는?” “좋습니다. A+" "신부님은요?” “좋아요, B+" 다리를 건널 때에 긴 하루 해가 산너머로 지고 있었고, 붉은 노을이 바다를 덮고 있었습니다. (2024년 9월 9일-11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