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bi 2024. 9. 5. 21:02

엘리자베스의 장례식 막바지에 그의 두 자녀가 관 앞으로 나와 하얀 상자를 열자 안에서 커다란 호랑나비가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올랐습니다. 동시에 참석자들이 미리 받은 삼각형 봉투에서도 수많은 나비들이 일제히 파란 하늘로 훨훨 날아올랐습니다. 엘리자베스의 삶과 사상을 상징하는나비. 그녀가 나비의 수수께끼에 빠진 것은 소녀 시절 폴란드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중 나치스의 마이다네크 수용소를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사람들이 가스실로 끌려가기 전날 밤을 보낸 막사의 벽마다 가득 그려진 나비 그림을 보며 엘리자베스는 강한 의문을 갖습니다. 왜 나비일까? 의문이 풀린 것은 그로부터 스물다섯 해가 지나서였습니다. “지금에야 겨우 그것을 알게 되었다. 포로들은 죽음을 앞둔 환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머지않아 나비가 될 것을 알고 있었다. 죽으면 이 지옥같은 곳에서 벗어날 수 있다. 더 이상 고문도 없다. 가족과 헤어질 일도 없다. 가스실로 보내질 일도 없다. 이 소름끼치는 삶도 이제 그만이다. 나비가 고치에서 벗어나 날아오르듯 곧 몸에서 벗어날 수 있다.그 나비 그림은 포로들이 후세에 남기고 싶었던 사후 세계에 대한 메시지였던 것이다.” (<삶의 수레바퀴>, “옮긴이의 말”중에서, 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