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영성/다네이 글방

<거지 소녀>를 읽고 나서

leibi 2024. 8. 23. 16:32

다른 사람이 읽을 책 선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매 학기 읽어야 할 책과 여름과 겨울 방학에 읽어야 할 책을 선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번 7월과 8월의 ‘고전/명작 읽기’에서 읽을 책으로 엘리스 먼로의 <거지 소녀>를 선택했다. 이유는 한 가지였다. 저자 엘리스 먼로가 노벨상을 받은 여류작가라는 것.

노벨상 수상작이기 때문에 작품성은 보장받은 것일테고,   여성작가이기 때문에 다네이 글방 대부분의 회원을 차지하고 있는 자매들이 큰 어려움없이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막상 책을 읽으면서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이기 때문에 재미있을 것이고 술술 읽히리라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책에 대한 글방 회원들의 나눔을 들으면서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하게 되었다.

왜 ‘재미있다’보다 ‘어렵게’만 여겨졌을까?

60년 대의 서구 캐나다 문화와 풍습에 대한 이해가 많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캐나다 작가 혹은 캐나다 문학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고 해야할까?

<거지 소녀>가 열 개의 단편으로 되어있는데, 각 단편안에서도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있고,  전체를 볼 때에도 각 단편이 얽혀 있는 부분이 있어정신을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길을 읽어버릴 가능성이 많아, 이에 대한 피로도 때문에 어렵게 여겨졌을 가능성도 있다.

엘리스 먼로는 패미니스트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알고있는  패미니스트의 대표적 특성인 성과 결혼에 대한 자유분방함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이것이 가톨릭 신자들의 성윤리와 가정윤리와 충돌하면서 생기는 껄끄러움도 있었을 것 같고.

<거지 소녀>는 등장 인물들의 내적 상태와 그것의 변화가 아주 정밀하게 뛰어나게 묘사되어 있다. 엘리스 먼로 자신이 체험한 것에 바탕을 두었거나 체험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묘사였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우리같은 평범한 독자들이 그 글을 따라가며 음미하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읽어나가는데서 만나게 되는 이런 어려움이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이유도 몇 가지있다.

로즈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욕구와 욕망. 이것이 사회 관습과 충돌할 때 무조건 포기하지  않고, 자기의 참모습을 찾아가는데 반드시 대면해야 할 것으로 받아들이는 로즈의 태도에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성이라는 틀 속에서 자신을 가두어 두려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에 대해서도 자기와 아무 관련이 없는 듯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로즈 자신의 삶에 대해 읽기 불편한 부분이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일을 묘사하고 있는 내용이 읽기에 불편할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현실의 불합리함과 부당함에 대해 목소리 높여 외치지 않고 있는데, 그래서 더 귀담아 듣게 되고 설득력있게 다가왔고 끝까지 읽을 수 있게 했다.  

<거지 소녀>에서는 로즈의 유년시절 기억부터 그가 중년 여성으로 성장할 때까지의 과정에 대한 내용이다. 그 이후 로즈가 어떤 생활을 하게 되었을지는 로즈의 생각과 삶에 대한 태도를 잘 알고 있는 독자들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보면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마음속에 품고 <거지 소녀>의 표제작인 “거지  소녀”를 다시 읽었을 때는 어렵지만 ‘재미있다’라는 생각이 더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