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글/생활 속에서
늦게야 임을 알게 되었나이다
leibi
2024. 8. 15. 15:42
무엇인가 쓰고 싶은데, 글로 표현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그 이유는 따져보면, 체험한 것이 확실치 않고, 생각을 구체적으로 해 보지 않았고, 당연히 글로 써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무엇인가 써보고 싶은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어렵사리 수학문제를 푸는 방식을 알았다. 그것도 내 힘으로 알아냈기 때문에 상당히 우쭐해져 있었다. 내가 힘들어 했던 문제여서 다른 친구들도 그러려니 생각하면서 내가 알아낸 방법에 대해 자랑삼아 설명했다. 내 이야기를 한참 듣고 있던 친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인데...“, “이제서야 그걸 알았어?”라고 했다. 그때의 허탈감. 그때까지 제법 똑똑한 사람처럼 보였던 내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면서 느꼈던 허망함과 부끄러움.
요새 들어와 이와 비슷한 체험을 많이 하고 있다. 수학 공식이 아니라, 철학적인 내용이나 아주 단순한 교리나 혹은 신학지식에 대해서 ”아하, 이런 뜻이 었구나!“라고 감탄하는 경우를 잦다. 책을 읽을 때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고, 그것도 몇 년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을 때. 그럴 때 마다, ‘아니, 이 사람은 이것을 그 옛날에 깨달았단 말인가? 더구나 그것에 대해 책을 쓸 때의 나이가 겨우 30대 초반이었다고... 그리고 60대 후반을 지나고 있는 나는 지금에서야 이것을 조금 깨닫고 있고.‘
내가 좋아하는 <고백록> 구절 중에 “늦게야 임을 사랑했습니다. 이토록 오랜 이토록 새론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임을 사랑하게 되었나이다.”라는 말이 있다. 아오스딩 성인께서 하느님을 향한 자기의 사랑이 너무 늦었다고 탄식하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 말을 “늦게야 임을 알게 되었나이다... ”라는 말로 바꾸어 나에게 적용시키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지식도 있지만, 대부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새롭게 다가오거나 깊이 있게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다시 탄식한다. ’아니, 그렇다면 지금까지 그렇게 많고 많은 시간을 건성으로 읽고 있었단 말인가. 나에게 남겨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텐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 때 가끔, 요새 느끼고 체험하고 깨달아 알고 있는 그 상태에서 다시 20대를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상태에서 제대로 공부하고 제대로 기도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늦게나마 뭔가 조금이라도 알게 해 준 주님께 감사드려야 하겠지만, 나의 욕심 때문에 해 보는 부질없는 생각일 뿐이다.
내가 써보고 싶었던 내용이 그대로 써지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글로 써보니, 생각이 정리되고, 어설프지만 나를 표현할 수도 있어, 한결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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