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영성/다네이 기도학교

어둔밤을 지날 때

leibi 2024. 7. 28. 15:29

안대 체험. 검정색 안대로 눈을 가리고 생활해보는 시간이다. 시각장애인을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방편으로 가끔 사용한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맡기는 것이 어떤 것일지 미루어 짐작해 보기 위해 사용한다. 일상생활속에서 시각이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 얼마나 큰 지 직접 알아보기 위해 사용하기도 한다.

시각이 닫히면 다른 신체의 다른 감각이 살아난다. 보통 때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청각과 촉각과 후각과 미각이 활성화 된다. 생존을 위해 다른 감각 기능을 총동원하는 것이다.

인간의 감각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는 외부로부터 오는 새로운 정보가 차단되어 모든 것이 혼란에 빠진다. 주변 사물이 또렷하게 보이고 구별할 수 있는 낮이 아니라, 사물들을 구별할 수 없는 밤처럼 되는 것이다. 지성으로 맑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를 낮이라고 하는 반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떨어졌을 때를 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감각이 닫히고 자기와 자기 주변에서 일어난 일을 이해할 수 없을 때, 어둔밤이라고 한다. 어둔밤에는 지금까지의 생활과 다른 방식으로 살지 않으면 안된다. 감각에 의존할 수도 없고 지성으로 파악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기 때문이다. 신앙의 빛에 의지해야 하는 시간이다.  하느님께 대한 자신의 믿음이라기 보다는, 신앙의 인도자에게 의탁해야 하는 때이다. 맹인이 자기가 사용하고 있는 하얀 지팡이에 의지하고, 주변의 인도자에게 자신을 맡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자기자신의 믿음보다 타인의 믿음이 더 확실한 도구가 된다. 주변에 있는 신실한 신앙인과 순교자들의 모범을 보고 믿으며 신앙의 길을 따라 걷는 것이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교회의 믿음이라고도 한다. 믿음을 보존하고 있고 전달해주는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든든한 신앙의 인도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