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브리/책 요약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leibi 2024. 7. 18. 20:35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로맹 가리/김남주, 문학동네, 2001)

 

* 그는 냉소적으로 생각하며 죽고 싶다는 만만찮은 욕구를 느꼈다. 때때로 고독이, 고약한 고독이 아침이면 그렇게 그를 엄습하곤 했다. 사람을 숨 쉬게 해 주기보다는 짓눌러버리는 고독이. 

* 그의 내부에 있는 무언가가 체념을 거부하고 줄곧 희망이라는 미끼를 물고 싶어했다. 그는 삶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황혼의 순간 문득 다가와 모든 것을 환하게 밝혀줄 그런 행복의 가능성을 은근히 믿고 있었다. 대책 없는 어리석음 같은 것이 그의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 여자는 너무나도 젊었고 너무나도 막막해하며 믿음에 찬 눈길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나도 많은 새들이 그 모래언덕으로 와서 숨을 거두는 것을 지켜보지 않았던가. 그중 가장 아름다운 새 한 마리를 구하고 보호해 여기 세상의 끝에 자신과 더불어 머물게 함으로써, 종착점에 이른 자신의 삶을 성공적인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한순간 그의 얼굴에 맑은 표정이 떠올랐다. 

* 그녀는 그를 향해 눈을 들고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지막 남은 눈물로 더욱 맑아진 애원하는 듯한 눈빛으로 "이곳에 머물게 해주세요." 하지만 그는 습관이 되어 있었다. 사람을 쓰러 뜨리고 뒤엎고 바닥으로 내던졌다가, 두 팔을 뻗고 두 손을 들어 올리고 물 위로 다시 올라가, 지푸라기가 눈에 띄는 순간 매달릴 시간만 남겨놓고 놓아버리는, 먼바다에서 다가오는 강렬하기 짝이 없는 고독의 아홉 번째 파도에. 그 누구도 극복할 수 없는 단 한 가지 유혹이 있다면 그것은 희망의 유혹일 것이다. 그는 자기 안에 있는 젊음의 그런 유별난 집요함에 얼떨떨해진 채 고개를 내저었다. 쉰을 바라보는 그런 자신이 정말이지 절망적으로 여겨졌다. ... 자크 레니에. 너 결코 달라지지 않을거야, 하는 냉소적인 생각으로 그는 자신의 팔과 어깨와 손에 매달려 있는 여자를 보호해주고 싶은 욕구에 저항했다. ... 그가 돌아왔을 때, 그녀는 방 한가운데 서서 젖은 원피스를 벗으려 애를 쓰고 있었다. 그녀를 도와 옷을 벗겨주고 가운을 입혀준 그는 한순간 자신의 품속에서 파들거리며 떨고 있는 그녀의 몸을 느꼈다. ... 그는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