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bi
2024. 7. 2. 12:19
전쟁이 나면서 학교도 바뀌었다. 규모가 축소되었고 사악한 기운과 무질서한 분위기나 스타일도 모두 사라졌다. 거친 남자애들은 군대에 갔다. 웨스트핸래티(로즈가 살던 마을) 역시 바뀌었다. 사람들은 전시 산업의 일자리를 찾아 떠났고 남은 사람들 역시 꿈도 꾸지 못했던 보수를 받으며 일했다. 부분적으로 땜질하던 지붕에는 전체적으로 지붕널을 얹었다. 주택은 페인트로 칠하거나 모조 벽돌을 붙여 단장했다. 냉장고를 사고 뽐내는 사람들도 생겼다. 로즈는 전쟁기와 그 이전의 웨스트핸래티를 생각하면 그 두 기간이 너무도 판이해서 마치 그곳이 완전히 다른 조명 아래 놓인 것처럼, 혹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화한 필름에 담긴 것처럼 느껴졌다. (“특권” 73)
*** 로즈가 살았던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마을 풍경이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살고 있는 사람과 주변부에 살고 있는 사람의 상황이 이렇게 다는 것이다. 역사적인 기록은 아니고 자전적인 소설이기 때문에 묘사되고 있는 부분이 얼마나 사실성에 근거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상상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전쟁의 주변부에 살고 있는 사람은 전쟁은 경제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침체되었던 경기가 살아나고, 그동안 미적거리고 있었던 난제들을 해치울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일어난 전쟁이 이렇게 좋은 결과를 가져왔던 것을 알고 있는 강자들은 은근히 전쟁을 바랄 수도 있다. 사람들이 죽고, 건물이 파괴되고, 인간성이 말살되는 것과 관계없이 주변부의 강자들이 얻을 수 있는 멋진 결과때문에 인간의 역사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건 아닌가.
전쟁의 종식을 바란다고 말하지만, 전쟁상태가 지속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고 전쟁을 부추기를 사람들. 얼마나 모순적이고 이율배반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