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bi
2024. 7. 2. 09:44
<거지소녀>, 엘리스 먼로/민은영, 문학동네, 2019
* 그녀(로즈의 새엄마 플로)가 역겨워한것은 사랑이었다. 예속과 자기비하와 자기기만이었다. 그것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그녀는 바로 그 위험을 보았고 허점을 읽었다. 앞뒤를 가리지 않은 희망, 열의, 바람. ( “특권” 72)
*** 로즈가 중등학교 다니고 있을 때, 자기반에서 어른처럼 보이는 코라에게 빠져든다. 코라를 위해 엄마 가게에서 사탕을 훔쳐 어렵사리 코라에게 주었지만, 코라가 그 사탕을 플로에게 되돌려 주면서 로즈가 한 행동이 모두 드러난다. 로즈가 이때를 회상하면서 새엄마 플로의 마음속에 있었을 것을 쓴 것이다.
로즈가 동급생 코라를 우상처럼 여기고 코라처럼 되길 바라면서 코라 흉내를 내고 코라 앞에서는 주눅들고, 코라를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희생을 감수하고, 코라를 위해 엄마 가게에서 사탕을 훔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코라에 대한 동성애적인 사랑이 아니라 코라에 대한 어린 소녀의 순수한 사랑이었다.
순수한 사랑, 그것은 새엄마 플로가 간파하고 있었던 것처럼, 얼마든지 자기를 낮출 수 있고 자기가 사랑하는 상대를 위해 종처럼 행동할 수도 있다. 순수한 사랑은 부나방이 불꽃으로 자기 몸을 던지는 것처럼, 결말이 뻔함에도 불구하고 그속으로 자기 몸을 던지는 무모함과 어리석은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게 한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 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