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bi
2024. 6. 30. 19:25
달빛을 받아 수용소 안의 뜰은 환하게 빛난다. 수용소의 등불들이 흐릿하게 빛나고 수용소 안의 막사들은 시커먼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식당 입구는 네 단의 넓은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이 계단도 지금은 그림자 속에 파묻혀 어둑어둑하다. 계단 위에 있는 작은 전등이 추위에 가만히 떨고 있다. 얼어서 그런지 아니면 먼지 때문인지 전등은 일곱 가지 무지개색으로 아롱져 있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182)
* 달은 벌써 중천에 떠 있다. 어두운 밤 하늘에 조각이라도 된 것처럼, 선명한 윤곽을 그리며 투명하게 빛나고 있다. 어떤 별들은 아주 환하게 멀리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그러나 슈호프는 한없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을 시간이 없다. 혹한이 여간해서 누그러질 것 같지 않다는 짐작만 잠깐 해 본다. 자유민의 말을 빌리면, 라디오에서 말하기를 밤에는 영하 30도, 새벽에는 영하 40도까지 내려갈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196)
* 달은 조금 전보다 훨씬 높이 떠 있다. 중천까지 높이 떠올라 있다. 엷은 초록빛을 띤 희멀건 하늘에는 별들이 이따금 솟아나 있다. 눈은 하얗게 빛나고, 막사 벽도 하얗게 빛난다. 수용소 구내의 외등도 희뿌연 빛을 내고 있다.(215)
* 황량하고 삭막한 시베리아 벌판, 그 한가운데 철조망으로 둘러쌓여있는 수용소의 풍경이 한폭의 그림처럼 그려져 있는데, ‘수용소의 하루’가 술술 읽혀지는 요인 중의 하나다. 물론 수용소를 자기 집처럼 생각하면서 살고 있는 아주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따듯한 마음으로 보여주고 있고, 이런 사람들이 수용소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안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