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bi
2024. 2. 17. 10:23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루카 5,20)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사람은 정신과 영으로만 되어 있지 않고, 몸을 갖고 있는 존재입니다. 영과 육, 이 두 가지가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 참된 인간이란 이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중풍병자와 그의 친구들은 그에게 중풍병을 낫게 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왜곡되어 있고 일그러져 있었던 하느님과의 관계에 대해 "너의 죄는 용서받았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그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이어서 그를 중풍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십니다.
우리들은 어떤 사건에 대해 말할 때, 시간적으로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과거와 미래를 함께 말할 수 있지만, 그런 말을 듣는 사람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미래에 일어날 일을 과거에 일어났던 것처럼 말해도 듣는 사람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시간과 공간안에 살고 있는 존재여서 시간과 공간을 고려하지 않는 말은 듣는 사람에게 혼란을 일으킬 뿐입니다. 그렇지만 '영원한' 주님께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죄의 용서를 말씀하신 바로 그 순간에 중풍병의 치유도 일어났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하신 일, 그리고 중풍병자에게 일어난 일을 보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신기한 일을 보았다'"(루카 5,26). 창조주 하느님께서 하신 일은 놀랍기만 합니다. 성부 하느님의 일을 하셨던 예수님께서 하신 일도 놀랍기만 합니다. 없던 것이 존재하게 되고, 존재한다고 믿었던 것이 순간에 사라져 버립니다. 이런 일을 하느님께서는 말씀으로 하시고,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또한 그렇게 성부와 똑같이 말씀으로 하십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지금과 전혀 다른 것이 나타나고, 지금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놀라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삶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하느님 말씀안에 있는 힘과 능력, 놀람과 경이로움입니다.
문제는 하느님 말씀이 지니고 있는 이런 날카로움이 일상에서 반복되는 일들로 무뎌진다는 것입니다. 나를 불편하게 하고, 흔들어 깨우는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말들로 다가온다는 말입니다. '진부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저그런 말, 아무런 힘과 충격도 없는 밋밋한 말, 썩은 냄새가 나는 것을 늘어놓은 것과 같은 새로움과 거리가 먼 말처럼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생명으로 충만한 하느님의 말씀과 전혀 관계없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들. 예수님을 신기한 분으로 받아들이고, 그분의 말씀을 신기하고도 신기한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느님의 빛을 청하고 도움의 은총을 청하는 사순절이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