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bi
2024. 2. 15. 16:58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마르 1,40-41)
예수님 당시의 나병 환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없었다. 외진 곳에서 혼자 살아야 했다. 다른 사람을 만날 수도 없었다. 혹시라도 길에 나설 때는 "부정한 사람이오"라고 외치며,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오지 못하도록 했다. 다른 사람이 어쩌다 그와 가까이했을 때에는 그 사람도 부정한 사람처럼 취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한' 나병환자는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간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가 자기에게 오는 것을 막거나 거부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의 외침과 바람을 듣고 오히려 그에게 손을 내밀고 그를 만지기까지 하신다. 자기처럼 부정하지 않는 사람에게 가까이 갈 수 없다는 법을 어긴 나병환자. 부정한 나병 환자를 만졌을 때 자기도 부정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예수님. 이 두 사람 사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가족과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아야 했던 나병환자. 그의 바람은 나병의 치유는 물론이고 일상의 삶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처럼 일하고 쉬고, 그들처럼 성전에서 하느님을 경배하며 살고 싶은 마음. 예전에 당연하게 했던 이런 일을 할 수가 없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소외되고 따돌림받고 있는 자기 처지를 보며 절망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 이런 자신의 처지에서 자기를 구해줄 수 있는 구원자를 갈망하게 되었을 것이고, 이런 갈망이 그를 예수님 가까이 가게 했을 것이다. 한편, 사람이셨던 예수님은 나병환자의 내외적 상태를 꿰뚫어보고 계셨다. 나병환자의 상황에 대해서 그가 체험하고 있었던 한계상황에 대해서 그리고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해방과 자유와 구원에 대한 갈망에 대해 알고 계셨다. 바로 이것 때문에 나병환자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갈 수 있었고, 그에게 손을 내밀어 치유해 주셨던 것이다.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나병환자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것보다 혼자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살고 있고, 일상적이고 평범한 관계를 외면하고 살고 있으며, 하느님께 대한 갈망은 줄어들거나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어느 부분 나병환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는 상황에서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고, 그분께 간청하고, 그분으로부터 치유를 받고, 다시 그분께 경배를 드린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