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bi
2024. 2. 8. 17:29
"중국인이세요?"
"아뇨!"
"일본인입니까?"
"아뇨!!!. 한국 사람입니다."
K-Pop, K-먹거리, K-드라마 등으로 한국이 외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전, 외국에서 흔히 들을 수 있었던 질문이고 이에 대한 신경질적인 응답이었습니다.
이름. 두 글자 혹은 서너 글자로 되어 있는 이름처럼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는 단어도 없을 것입니다. 몇 개 안되는 단어안에, 그 사람의 뿌리가 있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다시 말해 그 사람에 대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고난회원(Passionist)이라고 부릅니다. Passion. '열정'이라는 말이기도 하지만, 예수님의 수난(고난)이라는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을 고난회원이라고 하며, 사람들도 우리를 고난회원이라고 부릅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고난"을 기념하고 경축하는 날인데, 언제부터 그리 되었는지 모르지만, "명칭 대축일"이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고난회원'이라는 이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고난회원이라는 이름에 맞갖게 사는 것인가? 어떻게 하면 고난회원이라는 이름값을 하며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고난회라는 이름을 빛나게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먼저 고난회원은 사람들의 고통에 민감하고 섬세하게 반응하는 사람입니다. 상대방의 말과 몸을 통해 드러나는 고통뿐 아니라, 말과 표정으로 드러나지 않는 고통에 대해서도 알아차린다는 말입니다. 우주적이고 범지구적인 고통에 대해서 뿐 아니라, 한 그루 꽃이 짓밟히는 것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는다른 말입니다.
고통에 대해 섬세하게 알아차리고 공감한다면 고통받는 사람과 함께 머물수 밖에 없습니다. 상대방의 고통에 동참한다는 말이고 고통받는 사람과 관계를 맺고 연대하게 됩니다. 아무리 작은 고통이라도 고통은 한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혼란스럽게 하고 무너뜨리는 고통에 대해 함께 공동전선을 펼쳐 대항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곳이 고난회원이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고통에 대해 민감하고 섬세하게 반응하고, 고통받는 사람과 연대하여 고통과 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고난회원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십자가에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사람입니다. 고통이 현실과 관련된 것이고, 현실에서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고통은 그 현실보다 좀 더 높은 골고타 산, 그곳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던 예수님안에서 극복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통받는 사람과 함께 저 높을 곳을 향해 나갈 때, 다른 사람이 우리를 고난회원으로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고난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우리 수도복에 새겨져 있는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수도복뿐 아니라, 우리 삶 깊숙한 곳과 우리의 영혼 깊숙한 곳에까지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고난이 빛나게 되고, 우리가 고난회원으로 사는 것이 자랑스럽게 되길 바랍니다. (재의 수요일 전, 금요일: 예수고난회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념하는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