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bi
2024. 1. 23. 22:06
일들이 잘 되어 갈 때는 "사는 게 뭔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누구를 위한다고 말들 하지만, 자기를 위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말로써 소통하지만 말 때문에 어려움이 생깁니다. 침묵기도 시간에 그냥 침묵하며 머무를 때와 무엇인가 쓰려고 하지만 아무것도 생각나는 게 없을 때 침묵하는 것과 사뭇 다릅니다. 침묵기도의 침묵에서는 침묵안에 머무는 것이 목적입니다. 쓰기 위해 침묵하는 것은 어떤 생각이나 말을 찾고 있는 밀도 높은 노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벌써 1월의 끝자락에 왔습니다. 꼭 1년 전, 작년 1월에도 아주 힘들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생각했습니다. 지난 1주일 사이에 폭삭 늙었구나라고. 침몰하는 배에서는 신속하게 빠져나와야 합니다. 불타는 집에서도 신속하게 빠져나와야 합니다. 판세가 기운 게임에 끼어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지속되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이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해오고 있었던 교회의 일을 쉽게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그와 관련된 많고 좋은 체험들이 있기 때문이고,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그룹도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판세가 기우는 상황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투자하는 것이 소모적인 것처럼 보일 때가 있지만, 지금까지의 흐름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현상화만이라도 유지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위험 부담이 있는데, 이것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확신이 강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말합니다. 변화와 쇄신을 해야 한다고. 그렇지만 그것이 말뿐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위기의 상황에서 무엇인가 하고 있다고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확실함과 위험을 감당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없으면 변화와 쇄신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이합집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수도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서 하는 생각입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이곳 수도원의 미래에 대해 수없이 많은 말들을 했습니다.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다 고래했습니다. 관련된 사람들로부터 들을 수 있는 말들을 듣는 시간도 많이 가졌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이야기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결정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 결정이란 것이 지금의 상황을 크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결정을 했다는 것에 위안을 삼을 정도일 것입니다. 일을 저지르고 자기가 감당해야 하는 책임감, 주변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얻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소심함, 자기 주도적인 생각과 그것을 실천해 보지 않았던 타성에 젖어 생활했던 삶의 태도, 자기희생을 회피하고자 하는 무사안일 주의 등이 우리의 삶을 변화할 수 없게 만든다. 이런저런 이유로 미적거리다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리는 것인가, 아니면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고 있는 것인가, 이 두 가지 사이를 오가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