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bi
2023. 10. 27. 09:33
사실 ‘죽음의 기술’도 본질적으로 ‘삶의 기술’의 일부다. 죽음은 확실하지만, 그 시간은 불확실하다(Mors certa, hora incerta). 나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그리움을 부여안고 있지 않으며, 늙어간다고 비애에 젖지 않고 필사적으로 젊음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나는 영원한 삶을 믿기에 시간적인 삶을 끝없이 연장할 까닭이 없다는 것도 나에게는 죽음의 기술에 속한다. 나는 태어난 첫해 어머니품속에서 얻었던 근원적 신뢰를 수십년간 온갖 환난을 무릅쓰고 갖가지 어려움과 실망과 시련과 적대를 관통하며 검증된 신뢰로 보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이 신뢰를 끝까지 간직할 수 있을까? 아우구스티누스 이래 사람들은 이것을 특별한 ‘은총’이라고 말해왔다. 이 은총이 나에게 선사된다면 나는 기꺼이 또렷한 의식을 지니고 죽고 싶으며, 또 인간 품위에 맞갖게 세상과 작별하고 싶다. 아직 정돈해야 할 것은 모두 정돈하고 감사와 기대와 기도안에서. 이것이 궁극적으로 성공하는 영원한 삶, 평화와 조화와 항구적 사랑과 행복 속의 삶에 대한 나의 희망이다. 그런데 그 전에 “하느님, 우리 마음은 당신안에 쉬기까지 불안하나이다.”(<고백록> 1권 1장)라는 말을 기억할 일이다. (<나는 무엇을 믿는가>, 한스 큉/이종한, 분도출판사, 342-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