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브리/책 요약

관상생활

leibi 2023. 9. 7. 10:48

모든 운송 수단 가운데 생각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은 아마 기차일 것이다. 배나 비행기에서 보는 풍경은 단조로워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지만, 열차에서 보는 풍경은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 열차 밖의 풍경은 안달이 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그러면서도 사물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느리게 움직인다. ... 몇 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꿈을 꾸다 보면, 나 자신에게로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감정이나 관념들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진정한 자아와 가장 잘 만날 수 있는 곳이 반드시 집은 아니다. 가구들은 자기들이 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도 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가정적 환경은 우리를 일상생활속의 나라는 인간, 본질적으로는 내가 아닐 수도 있는 인간에게 계속 묶어두려 한다.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84-85)


*** 명상수련을 하는 사람들이 자주 ‘자기를 찾는다’라는 말을 한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아무리 좋아도 자기가 없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는 맥락에서 ‘자기’를 찾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는 말이지만, 자기를 잃어버리고 자신과 동떨어져 살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말이다.

문제는 이 ‘자기’라는 것이 계속 움직이고 변화되는 것이어서, 잡아둘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가 누군지 알았고, 그런 자기를 잡아두려고 하는 순간, 손으로 공기를 잡으려는 것처럼 자기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자기’를 계속해서 바라볼 수는 있을 것이다. 기차안에서 아주 빨리 지나가는 경치를 바라보면서, 스쳐지나가는 것에 매이지 않고,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빠르게 다가오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기차안에서 밖에서 움직이는 것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자기와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것들을 그냥 바라보고 있는 것, 이런 상태를 그리스도교에서는 ‘관상’이라고 한다.

정지되어 있고 움지이지 않는 자기 마음을 바라 보면서 그 시간안에 머물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역동적인 상태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관상은 고정된 어떤 것에 대한 말이 아니라, 어떤 상태를 말하는 ‘관상생활’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며 ‘생활’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