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bi
2023. 9. 6. 18:07
욕망은 이해하고 싶은 요구를 낳는다. 그녀는 어디로 갈까? 무슨 생각을 할까? 어떤 친구들이 있을까? 알렉산드리아로 가는 기선을 튀 캉과 함께 강배를 타고 마르세유로 가는 길에 플로베르도 어떤 여인에 대하여 비슷한 의문에 사로잡혔다. 다른 승객들은 멍하니 경치를 바라보고 있는데, 플로베르는 갑판 위의 여자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는 이집트 여행 일기에 이렇게 썼다. “그녀는 젊고 늘씬했으며, 밀짚모자에는 긴 녹색 베일이 달려있었다. 비단 재킷 밑에는 벨벳 칼라가 달린 짧은 프록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코트 양쪽의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있었다.... 나는 여행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지어내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혀 있다. 나는 엄청난 호기심에 사로잡혀 그들의 삶이 어떠할지 자문하고 있다.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어디에서 왔을까, 이름은 무엇일까, 이 순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엇을 안타까워할까, 무엇을 바랄까, 누구를 사랑할까, 무엇을 꿈꿀까... 그녀의 침실은 어떤 모양일까를 비롯해서 수많은 것들을 생각한다.”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124-125)
여행할 때 수많은 질문을 한다. 알랭드 보통은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질문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은 여행에 대한 큰 부담이 없는 경우에 해당 되는 것처럼 보인다. 국내에서 비교적 안정된 상태에서 여행 할 때, 길이나 가게에서 잠깐 만난 사람 혹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비교적 오랫동안 살펴볼 수 있는 때. 반대로 여행에 대한 부담이 크고 보고 듣고 만나는 것들이 빨리 변화하는 외국 여행에서는 외부의 사물과 변화에 대해 질문을 하기가 쉽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질문할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질문을 더 많이 하지만 그 질문의 방향이 외부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향해 수없이 많은 질문을 하게 된다.
나는 왜 그렇게 살았던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무엇 때문에 그리 고통스러웠던가, 나에게 일어났던 그 일들이 무슨 의미였을까, 바보처럼 산 것이었던가 아니면 성실하게 산 것인가... 이처럼 숱하게 많은 질문을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답이 쉽게 얻어지지도 않은 질문을 하면서 하는 그냥 시간을 죽이고 돌아온 여행처럼 보일 때가 더 많다. 그렇지만, 삶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질문과 문제를 안고 사는 것이기 때문에, 고달픈 여행 후에 부쩍 성장해 있는 자신을 보는 복된 시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