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bi
2023. 8. 1. 12:00
어제 포도주 창고 관련 담당 신부님이 지프차를 빌려주었다. 성품이 따뜻한 신부님이 내가 수도원 주변을 돌아보고 싶어하는 것을 눈치 채고 멀리 언덕 너머까지 가 보라면서 차를 내 준 것이다. 나는 차를 운전한 적이 별로 없다. 성 보나벤투라 대학에 있을 때 한두 번 교습을 받기는 했다. 지프차를 차고에서 꺼내 신나게 숲 쪽으로 차를 몰았다.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길이 여기저기 깊게 패어 있었다. 전륜구동을 발견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나는 도랑으로 미끄러졌으나 다시 나와 시내를 따라 갔는데 또 다시 진흙탕에 박혀 나무에 부딪혔다. 내가 대로로 나왔을 때 또 다시 막혀 전륜구동으로 빠져나오려고 했다. 그리고 언덕에서 곧장 내려오는 자동차와 함께 길 한복판 옆길에서 멈추고 말았다. 내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그 순간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지프차를 미친 듯이 운전하여 혼동과 기쁨이 교차하는 행복하고 밝은 안개에 쌓였다. 마침내 온통 진흙으로 뒤덮이 차를 몰고 수도원에 돌아왔다. 포도주 창고 관리 신부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프차를 타지 말라고 내게 주의를 주었다. (<토마스 머튼의 시간>, 1949년 12월 27일)
☞ 젊은 토마스 머튼의 무모한 열정이라고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자기의 삶으로부터 튕겨나가고 싶어하는 마음. 주변에 있는 사람과 자기가 살고 있는 환경에 대한 반발과 거부 반응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몇 년 전, 이와 비슷한 일이 우리 공동체에서도 일어났다.
젊은 형제 두 사람이 차를 타고 나가 영화를 보고 술을 마셨다. 주자창에서 차를 후진하면서 뒤에 있는 차와 가볍게 부딪쳤다. 아주 가벼운 접촉이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혹은 술기운에 그대로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운전미숙으로 산비탈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간신히 차에서 빠져 나와 보험회사 서비스카의 도움으로 차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형편없이 망가진 차를 끌고 귀원했다. 우리 차와 부딪힌 차주가 우리 차적을 조사하여 경찰에 신고했고, 문제가 복잡하게 되었다.
토마스 머튼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에피소드 중의 하나다. 이와 비슷한 일이 가끔 일어난다. 자기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게 되고, 자기 마음속에 쌓여있었던 찌꺼기들이 떨어져 나가는 순간이기도 하다.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