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bi
2023. 5. 12. 21:23
어머니가 중증 정신질환으로 입원 허가를 받고 나서 몇 주 뒤, 신문쟁이 P를 만났다. 어머니는 날이 갈수록 퇴행했고 갑작스럽게 노인이 되어버렸다. 어떻게 하면 이런 일을 견뎌나갈 수 있을지를 스스로에게 묻던 때였다. ... 그해 봄, 어머니의 병이 가차없이 악화되어가는 동안, 우리가 처음 갔던 호텔, 카사노바 호텔에서 미친듯이 P와 섹스했다. 그곳은 소음을 흡수하는 장소로, 오가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와도 결코 마주친 적이 없었다. ... 그런 호텔방에서 어머니 생각이 날 때가 있었다. 쪼그라들어가는 어머니의 몸뚱아리와 배설로 더러워진 속옷의 이미지를 견디자면 오르가슴이 필요했던 듯하다. 어머니의 완전한 고독을 지워버리자면 - 혹은 거기에 가닿으려면 - 쾌락에 의한 기진함, 정액과 땀에 의한 완전한 고독을 극단까지 밀어붙여야만 했나보다. 어렴풋이, 카사노바 호텔의 방과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의 병실이 겹쳐졌다. (<카사노바 호텔> "카사노바 호텔", 아니 에르노/정해용, 문학동네, 2022, 9-14)
☞ 마라톤. 인간 체력의 극한까지 밀고나가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달리기다. 마라토너들은 이런 과정에서 만나는 고통을 어떻게 이겨나갈까? 확실한 것인지 잘 모르지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겪고 있는 고통을 경감시키고 이겨내게 하는 분비물이 체내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고통을 자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외면하고 피하고 싶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고통은 필연적이다. 삶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형태의 이 고통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통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게 할 것인가. 고통의 대척점에 있는 쾌락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 아닐까? 쾌락에 의존하여 고통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자 하는. 쾌락이라고 했지만, 기쁨, 즐거움, 가벼움, 상쾌함, 신선함 등으로 바꾸어 표현해도 되는. 한 까치의 담배를 피우며 사무실의 답답함에서 잠시 벗어난다. 시원한 한 잔의 맥주를 마시며 한 여름 더위를 잊는다. 창을 열어 신선한 공기를 들어오게 하여 텁텁한 방안에서 벗어난다.
에르노는 왜 카사노바 호텔을 찾았을까? 어머니가 처해있는 현실을 보고 그것을 잊고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 육의 쾌락을 위해? 자기에게 뒤집어 씌워있는 사회적 굴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카사노바 호텔 구석진 방에서 병실에 있는 어머니를 생각하는 에르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인간은 이렇게 이율배반적이고 모순적이다. 도대체 양립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것을 하나의 몸둥아리에 담고 있는 존재이다. 존재론적으로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