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bi
2023. 2. 2. 11:30
Quando ebbero tutto compiuto secondo la legge del Signore, fecero ritorno in Galilea, alla loro citta' di Nazaret. Il bambino cresceva e si fortificava, pieno di sapienza, e la grazia di Dio era sopra di Lui. (Lc 2,39-40)
한스 큉의 책을 읽으면서 "꿈(Traum)은 거품(Schaum)이다"라는 독일 속담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꿈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꿈을 가져라고. 꿈을 꾸라고. 꿈은 이루어진다고. 꿈이 없는 삶은 죽은 삶이라고. 꿈은 성장과 성숙의 원동력이라고. 이런 꿈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거품처럼 허망하다는 말입니다. 그럴까요? 정말 그렇다라면, 왜 그렇게 많은 성경의 예언자들이 미래에 이루어질 하느님 나라를 향한 꿈에 대해서 이야기했을까요? 그리고 "나는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라는 마르틴 루터 킹의 연설은 또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한스 큉은 말합니다. "실현되지 않는 게 더 나은 꿈들이 있다. 실현되지 않는 게 안타까운 꿈들이 있다. 나중에야 실현되는 꿈들이 있다." 그래서 '꿈은 거품이다'라는 속담은 그 꿈이 거품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말일 것이고, 실현되지 않는 안타까운 환상과 망상과 같은 꿈도 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꾸는 꿈은 하느님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꾸는 꿈이고, 그것이 언젠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하느님으로부터 약속받은 꿈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러 예루살렘에 가십니다. 가시면서 그 아이의 잉태 순간과 탄생의 순간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 아기를 시메온 예언자와 함께 하느님께 봉헌하면서 자기들이 약속받은 오래된 꿈을 되새깁니다. 너무 오래되어 퇴색되었고, 잊혀져 버린 꿈입니다. 성전에서 고향 나자렛으로 되돌아 가면서, 그 아기가 자기들의 삶에서 너무 오래되어 퇴색되어버렸고 잊혀져 버린 꿈을 함께 이루어 줄 것이라는 희망과 믿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바로 그 꿈 때문에 마리아는 자기 영혼이 창에 꿰찔리는 고통을 감수하게 될 것이고, 요셉은 그림자처럼 드러나지 않는 생활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시메온은 평화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떠날 수 있을 것이며, 한나는 여든네 살이 될 때까지 성전에 머물렀던 자신의 생애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알고 감사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주님 봉헌 축일입니다. 축성생활의 날, 수도자들의 날이기도 합니다. 아주 오래 전, 마음속에 있었던 꿈과 소망과 바람과 열망과 기도가 어떻게 되었나 되돌아보게 하는 날입니다. 이런 생활을 하면서 내일 당장 이루어야 할 일에 대한 계획과 몇 년에 걸쳐 이루어야 할 계획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런 인간적인 생각과 계획이 예수님과 함께 꾸는 꿈 안으로 들어오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들, 특히 수도자들은 현실과 꿈 사이 어딘가에서 살고 있습니다. 현실에서 이루어진 꿈은 더 이상 꿈이 될 수 없음을 알고,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과 자기봉헌과 희생이 없는 삶은 한갓 거품과 같은 생활임을 되새기며 사는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