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bi 2022. 12. 13. 22:24

바람이 분다. 유리창이 덜컹거린다. 커텐이 움직인다. 바람소리 때문에 고요함이 깊어진다. 기억과 생각과 상상을 바람에 실어 보낸다. 내가 했던 그 많고 많은 생각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형제가 없는 곳에서 와서, 아무런 형체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을까? 생각이 사라져 버린 곳이 빈자리로 남아있다. 새로운 소리와 형상이 나타나지 않는, 그곳을 바라본다. 

 

아브람은 이 모든 것을 주님께 가져와서 반으로 잘라, 잘린 반쪽들을 마주 보게 차려 놓았다. ...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자, 연기 뿜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그 쪼개 놓은 짐승들 사이로 지나갔다."(창세 15, 10. 17) 기도한다는 것은 나를 반으로 잘라 나를 열어놓는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내가 누구인지를 속속들이 아시게 나를 열어놓는다는 말이다. 그 사이로 주님의 영이 지나가면서 어두운 곳은 밝혀주시고, 젖어있는 것은 말려주시고,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것들은 제자리에 갖다 놓으신다. 바람이 분다. 가끔 "주님"을 부른다. 그것뿐이다.  부드럽고 감미로운 겨울밤의 침묵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