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글/생활 속에서

어디로 가나

leibi 2022. 12. 3. 15:54

새벽에 집을 나섰다. 얼굴을 스치는 새벽 산골 바람이 매섭다. 남대천이 보이고, 밤새 켜져있었을 읍내의 가로등이 보인다. 진홍빛 구름과 진한 회색 구름 사이로 여명이 비친다. 자동차가 스쳐지나가고, 우리 차를 엄청 빠른 속도로 추월하는 차도 있다. 어디선가 보았던 풍경과 아주 비슷하다는 느낌 뿐, 어디였던가는 생각나지 않는다. 낯선 나라 낯선 곳을 떠돌고 있을 때 주로 새벽에 이동했다. 그때 어슴푸레하게 보았던 이국의 경치와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져 있는 이곳의 경치가 오버랩되는 것일까.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모든 승객이 다시 잠을 자는 것 같다. 나처럼 새벽 일찍 일어났을 것이다. 백두대간을 통과하여 영서 지방으로 들어섰을 때부터 제법 많은 눈이 내렸다. 여름을 지나 첫번째 오는 눈을 첫눈이라면, 첫눈 내리는 날이다. 첫눈의 기쁨을 친구들과 나누었던 때가 언제였지. 작년에 첫눈을 보며 누군가에게 연락을 했던가.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저 평범한 인사였을 것이다.

서울은 언제 와도 약간 긴장되는 곳이다. 산속 외진 곳에서 살다가 복잡한 곳으로 들어간다는 것 때문이리라. 터미널 주변 식당에 약간 늦은 아침 식사를 하는 사람이 제법있었다. 아주 조용하다. 주문할 때에도 키오스크를 사용하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주문된 음식을 말없이 준비하는 사람 앞에서, 말없이 기다리고 있다. “맛있게 드세요”라는 말에 “고맙습니다”라는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치과용 의자에 누워있지만, 몸과 마음은 긴장이다. 의식적으로 긴장을 풀고, 화살기도를 하고, 가끔 떠오르는 생각이 흘러가게 놔두고 기다리면 된다. 나를 도와주기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고,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고맙다. 어제 엄지손가락 신경수술을 했던 분과 함께 고마운 사람들이 많지만, 의사처럼 고마운 사람이 어디있느냐라는 말을 했었다.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 어떤 형태로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지 않고서 살 수 없는 우리 삶이다.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사람들을 ‘지공족’ 혹은 ‘지공파’라고 한단다. 지금까지 사회에 공헌한 일도 없는데, 지하철까지 공짜로 타니 약간 미안한 마음이다. 그 반열에 들었음이 아쉽지는 않다. 다시 산길을 걸어 걷는다. 한때는 2킬로미터 넘는 산길을 달려가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밖에 나갔다 들어가는 차를 만나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을 안고 천천히 걸어간다. 절반쯤 걸었을 때, 그런 차를 만나 기분이 약간 좋아졌다.  

마취된 상태에서 밥을 먹기가 쉽지 않다. 며칠 전에는 안 입술을 깨물어버렸다. 아직까지 아물지 않았다. 음식물을 한쪽으로만 씹어야 하는 불편함과 함께 음식맛을 모르고 대충 씹었다 삼킨다. 불편하지만 견뎌야 하고, 모두 필요한 과정이다.

다시 산길을 걸어 자주 갔었던 주변의 작은 절로 간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고, 나무 태우는 향극한 냄새가 나고, 양철통으로된 연통에서 나오는 연기만 보인다. 대웅전 앞, 툇마루에 걸터 앉는다. 작은 계곡에서 물흐르른 소리가 아주 맑다.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까? 졸졸, 짜르르... 까아악 우는 까마귀가 제법 많다. 바람소리가 들린다. 바람이 없어 무덤덤하게 서있는 벌거벗은 나무가 보이고, 요지부동으로 자리잡고 있는 대웅전 앞의 바위가 있다. 왜, 이곳에 앉아 있지. 조용하다. 있음을 느끼며, 현존하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남의 집에 와서 기도하려고 하기 때문일까.

행복한가. 행복했던가. 행복할 것인가. 잘 모르겠다. 하느님을 뵙지 못해서 확답을 못하는가. 하느님의 뒷모습이라도 보았다면 어떻게 바뀌었을까. 지금보다 매임없이 자유로웠을 것 같다.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고요하게 머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행복이라 할 수 있을까. 다시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하느님을 뵙고 만났더라라면, 지금 보다 나은 사람으롤 되었을까. 하느님을 뵙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처럼 살고 있는 것인가. 하느님을 뵈었던 뵙지 못했던 하루에 세끼 밥을 먹어야 했을 것이다. 하느님을 뵈었다면 모든 것, 생각과 상상과 욕망과 무엇인가 하고자 하고 이루고자 하는 의지로부터 자유로워졌을지 모르지만, 그렇다 해서 행복하게 되었을지에 대해서는 다시 확신을 할 수가 없다. 생각과 생각들을 부처님은 망상이라고 하셨지. 그 망상을 부처님께 맡기고 다시 산길을 내려온다. 어디로 가야하는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