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bi 2022. 11. 4. 10:14

아낌없이 주는 나무, 쉘 실버스타인

 

1

옛날에 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그 나무에게는 사랑하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날마다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서 떨어지는 나뭇잎을 한 잎 두 잎 주워 모았습니다. 그리고 나뭇잎으로 왕관을 만들어 쓰고 숲 속의 왕 노릇을 했습니다. 소년은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가서는 나뭇가지에 매달려 그네도 뛰고 사과도 따 먹곤 하였습니다. 나무와 소년은 숨바꼭질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피곤해지면 소년은 나무 그늘에서 단잠을 자기도 했지요. 소년은 나무를 무척 사랑했고,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2

시간이 흘렀습니다. 소년도 점점 나이가 들어갔습니다. 나무는 홀로 있을 때가 많아졌습니다. 어느 날, 소년이 나무를 찾아갔을 때 나무가 말했습니다. “얘야, 내 줄기를 타고 올라오렴. 가지에 매달려 그네도 뛰고, 사과도 따 먹고, 그늘에서 놀면서 즐겁게 지내자.” “난 이제 나무에 올라가 놀기에는 너무 커 버렸는걸. 난 물건을 사고 싶고, 신나게 놀고 싶단 말이야. 그래서 돈이 필요해. 내게 돈을 좀 줄 수 있겠니?” 소년이 말했습니다. “미안하지만, 내겐 돈이 없는데.” 나무가 말했습니다. “내겐 나뭇잎과 사과밖에 없어. 얘야, 내 사과를 따다가 도회지에서 팔지 그러니? 그러면 너는 돈이 생기고 행복해질 거야.” 그러자 소년은 나무 위로 올라가 사과를 따가지고 먼 곳으로 떠났습니다.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3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소년은 돌아오지 않았고, 나무는 슬펐습니다. 어느 날, 소년이 돌아왔습니다. 나무는 몹시 기뻐서 몸을 흔들며 말했습니다. “얘야, 내 줄기를 타고 올라오렴. 가지에 매달려 그네도 뛰고 즐겁게 지내자.” “난 나무에 올라갈 만큼 한가롭지 않단 말이야.” 소년이 말했습니다. “내겐 따뜻하게 지낼 집이 필요해. 아내도 있어야겠고, 자식도 있어야겠고. 그래서 집이 필요하단 말이야. 나에게 집 한 채 마련해 줄 수 있겠니?” “나에게는 집이 없단다.” 나무가 대답했습니다. “이 숲이 나의 집이지. 하지만 내 가지들을 베어다가 집을 짓지 그래. 그러면 행복해질 거야.” 소년은 나무의 가지들을 베어 집을 지으려고 가지고 갔습니다.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4

떠나간 소년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소년이 돌아오자, 나무는 기뻐서 말을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리 온 얘야.” 나무는 속삭였습니다. “와서 나랑 놀자.” “난 나이가 너무 많아 놀 수가 없어.” 소년이 말했습니다. “배가 한 척 있었으면 좋겠어. 멀리 떠나고 싶거든. 내게 배 한 척 마련해 줄 수 있겠니?” “내 줄기를 베어다가 배를 만들렴.” 나무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너는 멀리 떠나갈 수 있고, 행복해질 거야.” 그러자 소년은 나무의 줄기를 베어 배를 만들어 타고 떠나 버렸습니다.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지만, 정말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5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소년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얘야, 미안하다. 이제는 너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사과도 없고.” “난 이가 나빠서 사과를 먹을 수가 없어.” 소년이 말했습니다. “내게는 이제 가지도 없으니 네가 그네를 뛸 수도 없고.” “나뭇가지에 매달려 그네를 뛰기에는 난 이제 너무 늙었어.” 소년이 말했습니다. “내게는 줄기마저 없으니 네가 타고 오를 수도 없고.” “타고 오를 기운도 없어.” 소년이 말했습니다. “미안해.” 나무는 한숨을 지었습니다.

 

6

무언가 네게 주고 싶은데, 내겐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단다. 나는 그저 늙어 버린 나무 밑동일 뿐이야.” “미안해.” “이젠 나도 필요한 게 별로 없어. 그저 편안히 앉아 쉴 곳이나 있었으면 좋겠어. 난 몹시 피곤하거든.” 소년이 말했습니다. “, 그래.” 나무는 안간힘을 다해 몸뚱이를 펴면서 말했습니다. “, 앉아서 쉬기에는 밑동이 그만이야. 얘야, 이리로 와서 앉으렴. 앉아서 쉬도록 해.” 소년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산책할 때 가끔 찾아가는 나무등걸이 있습니다. 앉아 쉬기에는 그만입니다. 계절에 따라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가을에는 '툭'하고 도토리나 밤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겨을에는 나무와 나무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좋습니다. 바람소리와 함께 깍깍거리는 까마귀 소리도 들립니다. 봄에는 아무래도 새소리입니다. 새소리를 듣고 새 이름을 알아맞추는 사람도 있다던데, 아직은 새소리만 듣고 있습니다. 여름에는 벌레가 귀찮게 해 앉아 있기에 힘듭니다. 그렇지만 가장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풀벌레 소리와 날파리와 모기와 벌레가 나무잎을 쏘는 소리까지 들립니다. 이런 소리를 들으면서 읽었던 책의 내용을 기억하기도 하고, 기억하는 내용에 새로운 생각을덧붙이면서 앉아 있습니다. 가끔 음악을 듣기도 합니다. 숲의 소리에 사람의 소리를 더하고 싶은 마음에서 입니다. 집중해서 듣지 않고 소리가 나는대로 그냥 놔둡니다. 이런 소리와 함께 숲의 고요와 침묵과 적막함과 비어있음으로 숲이 꽉 차있는 듯합니다. 이런 쉼의 자리와 생각의 자리와 명상의 자리를 내어주고 있는 나무등걸이 있어 숲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