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날
아침 식사를 일찍했다. 8시 30분에 출발했다. 일찍 떠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햇빛이 쨍쨍이었다. 더위를 감당하려는 마음을 다졌다. 국도로 갈 수도 있고 고속도로를 경유해서 갈 수도 있었는데, 국도에 대해서는 생각을 못했다. 평일이어서 차량이 많지 않았다. 평소에도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닌데, 며칠동안 거의 말없이 지냈다. 말하지 않는 것이 더 편했기 때문이다. 치명자산에 10시 쯤 도착했다. 몇년 전 순례할 때 들렀던 곳이었다. 전라북도 안에 있는 천주교, 개신고, 불교, 원불교의 성지를 연결하는 순례길이었다. 7-8백킬로미터 되었던가? 그때에는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의아하게 여겨진다. 힘은 열정이고, 이 열정은 고통과 사랑이다. 몸과 마음속에 사랑이 있었건,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있었다는 말이리라. 분위기 좋은 경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평화의 집>이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세세하게 구경은 하지 않았다. 치명자산에 올라가자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더위도 더위려니와 속해있는 조의 구성원들이 비교적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전동성당을 방문했다. 여섯 살이었던가, 일곱 살이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때 처음으로 전동성당을 보았다. 시커먼 집과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을 기억하고 있다.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에 대해서는 이곳 블로그 어디에선가 썼었다. 한옥 마을을 구경하고, 전주하면 자연스레 나오는 비빔밥을 먹었다. 미슐렝에 소개된 집이라고 했다. 아이스크림 먹는 것은 쉽지 않았다. 키오스크를 사용해서 주문하는 것이었는데, 간단한 것인데도 복잡하게 생각되었다. 직원의 도움을 받아 주문을 했다. 편하니까, 도입했겠지만, 불편했다. 앞으로 이와 유사한 더 많은 불편함을 감당해야만 할 것이다. 돌아오면서 담양 천주교 묘지에 들렀다. 선교사 형제가 아는 수녀님을 보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눈에 익은 분들의 이름이 많았다. 세상에 살 때에도 어쩌다 한두 번 보고 만난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세상을 없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더운 날씨에 돌아다니기도 힘들어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시원한 곳에서 쉬는 것 외에 바랄 것이 없었다. 저녁 식사는 밖에서 했다. 생고기와 불고기를 먹었다. 요새는 가끔 맥주를 한두 잔 마신다. 시원한 맛 때문이다. 저녁에는 바람기가 있어 조금 시원했다. 달이 제법 밝아 정원을 걷기에 좋았다. 간간이 새소리가 들린다. 바로 앞길에서 자동차 소음이 뒤섞여 들려온다. 셋째 날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