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머튼의 통찰력
사랑하는 사람들의 선함에 얼마나 큰 빚을 지고 있는지 누군들 알 수 있을까? 사람들이 우리를 사랑해 주는 것이 그들의 우정이 우리를 멸망에서 구원할 수 있음을 알았다면 우리는 겸손을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우정을 당연히 여기고 우리에게 베푸는 호의에 감사하지 않는다. 사랑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우리가 받을 몫을 주기 위해 그들이 우리에게 온 것이라고 착각한다. 우리가 천사처럼 선한 매력이 있어 우리를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내가 글로 쓴 것 가운데 실제로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 내가 기도하고 내 의지로 행한 선은 하나도 없다. 누구가의 기도가 있었기에 다시 하느님께 기도할 수 있는 은총이 주어진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절제된 생활을 하려고 노력했다. 극단적인 훈련은 아니었지만 몇 번이나 술을 마셨는지 기록하고 담배를 끊기 위해 날마다 담배 갯수를 줄이려고 노력했고 며칠에 한 번씩 몸무게를 재며 체중을 조절했다. (<토마스 머튼의 시간>, 토마스 머튼/류해욱, 바오로딸, 2010, 67)
☞ 머튼의 글을 읽으면서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만날 때마다, '이런 글을 쓸 때 그가 몇 살이었지?"라고 묻게 된다. 위의 글은 그가 1938년 세례를 받고 1940년 여름 프란치스코 수도회로부터 입회거부를 받은 해인 1940년 12월 4일, 그가 스물다섯 살 때 쓴 글이다. 그래서 다시 묻게 된다. 머튼이 이런 글을 쓸 때 그와 관련된 어떤 생활 체험이 있었을까?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으로 그런 글을 썼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이것 때문에 그를 뛰어난 작가, 뛰어난 영성가의 자질을 갖고 있었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면, 자기가 체험한 것을 토대로 글을 쓰는 것이 가장 좋지만, 체험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삶과 인간에 대한 통찰력을 기반으로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그가 쓴 글이 글로만 그친다는 말이 아니고, 그가 나이는 적지만 삶과 인간에 대한 깊고 넓은 통찰력을 가진 성숙한 단계에 있었으며, 그것을 글로 전달하고 표현할 수 있는 재능과 사람들에게 하느님에 대한 영감을 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재능을 가졌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