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글/생활 속에서

고속버스 안에서

leibi 2022. 1. 8. 22:37

고속버스에 일반과 우등과 프리미엄이 있습니다. 등급을 따져 타기보다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이나 만나야 할 사람과의 약속 위주로 예약을 합니다. 물론 급하거나 표가 없는 경우에는 상황에 맞춰 탈 수 밖에 없습니다만. 어제 양양으로 내려 올 때는 일반 고속버스를 탔습니다. 우등에 비해 좌석의 폭과 앞뒤 간격이 좁습니다. 좌석에 앉아 있는데 체구가 상당히 큰 자매가 옆에서 제 좌석 옆 안쪽 좌석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앉은 상태에서 안쪽으로 들어가시게 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일어서서 자리를 비운 다음 앉았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분이 앉자마자 넓지 않은 좌석 두 개가 꽉 찼습니다. 저나 그분 이 입고 있는 두툼한 옷 때문에 더욱 더 좁게 여겨졌습니다. 제 좌석의 3분의 일 정도가 그분에게 빼앗긴 듯했습니다. 금요일부터 주말이 모드로 들어가는지 피해갈 빈자리도 없었습니다. 난감했습니다. 좌석과 공간에 대한 제 권리를 되찾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체중에 따라 고속버스 요금을 받으면 어떨까, 체중에 따라 고속버스 등급을 정해주면 좋겠는데 등의 쓸데없는 헛 생각을 하면서 속을 삭히고 있었습니다. 

 

뒷 좌석에서는 젊은 아가씨 두 명이 신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승객들의 눈치를 보는지 소근거리고는 있었지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들리기도 했습니다. "난파선에서 구명 조끼가 하나 밖에 없을 때 어떻게 하겠어?" (헐! 이분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두 사람이 나누고 있었던 앞부분의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당연히 내가 입어야지." (응, 그래야지.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나도 그럴 것 같애." (나도 그렇게 할 거 거든. 역시 사람들의 마음은 똑같애.) 그 다음 대화는 내 생각에 몰두하느라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와 비슷한 질문을 가끔 합니다. 얄궂게도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 끼리. 대답하기에 아주 난감한 질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싸움을 걸기 위한 준비작업처럼 여겨집니다. 가정해서 질문하면서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선택하라고 하는 것처럼 바보같은 질문도 없습니다. 어떻게 답을 해야 할까요? "하나 뿐인 조끼를 당연히 너에게 주어야지"라고 말해야 할까요? (나없는 세상에서 너만이라도 행복하게 살아라... 영화에서 가끔 나오는 장면입니다)  그렇지 않고, "당연히 내가 입어야지."라고 말하는 순간 사랑의 싸움은 시작되는 거죠. 

 

사람의 마음속에는 뿌리깊은 삶에 대한 애착이 있습니다. 위급한 상황에서는 '우선 나 먼저 살고 보자'라는 마음이 일반적인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에 등장하고 매스컴에 가끔 올라오는 위대한 분들의 희생정신을 일반화 시킬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분이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다면, 이것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자기 마음속에 항상 타인에 대한 사랑과 그를 위해 희생하리라는 마음을 품고 있었던 결과였을까? 그렇다면, 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하나밖에 없는 조끼를 낚아채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밀쳐낼 사람이겠네... 내 자리의 3분의 일(아마 4분의 일이었겠지만)이 빼앗겼다고 마음속에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니.

 

순교는 연습하고 각오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능하다라는 말을 들었다. 순교하기 위해 애를 쓰기 보다, 현실적인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 그것이 부족하고 부끄럽고 바람직하지 않는 모습이어서 다른 사람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할지라도. 그런 나를 주님께 의탁하고 그분의 도움을 청하며 매 순간을 살면 되는 것 아닌가. 버스가 터미널에 도착할 때쯤에는 마음이 누그러져 있었지만, 옆좌석에서 동행했던 분이 좋아지지는 않았다. 반면, 뒷좌석에 앉은 젊은 학생들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도대체 어떤 분들이었길래 그렇게 난해한 대화를 하고 계셨나 궁금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