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지만 느긋하게
지난 주 월요일부터 2주간 외부 작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오래 전에 잡은 날짜였습니다. 피정자를 받지 않았습니다.
우선 먼저, cctv를 설치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연결선이 천장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천장안으로 들어가 세멘트 벽을 뚫고 선을 깔았습니다. 세 명의 형제들이 이런 작업을 하고 있을 때, 광주에 다녀왔습니다. 수도회 창립 3백주년 기념행사 중의 하나로 전세계를 순례방문하고 있는 창립자 유해와 3백주년 기념 이콘을 모셔오기 위해서였습니다. 운전은 동반자 회원이 하셨지만, 1박 2일에 광주까지 갔다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이런 와중에 관구장님 방문이 있었습니다. 1년에 한 번 하는 형제적 방문이라고 하지만, 신경쓰이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관구장님 공식 방문 마치는 날, 유해와 함께 이콘이 떠나는 기로 한 바로 전날, 후배 신부의 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타지역에서 오고 있는 형제들을 생각하며 영안실에 일찍 갔습니다. 아버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동안, 주방 자매는 봉사자들과 함께 김장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버님을 보내드리고, 관구장님과 유해와 이콘을 떠나보내고, 공사하다 중단하고 있었던 현관 데크 공사를 했습니다. 형제 중의 한 명이 포크레인 기사 시험을 보러갔기 때문에 일손이 부족하지만, 저는 공사하고 있는 형제들을 도와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창립자 편지작업 때문이었습니다. 길게는 3년 짧게는 2년을 매달려 있는 작업입니다. 매일 오전과 오후 두 시간동안 일합니다. 전에는 저녁에도 작업을 했는데, 체력이 딸리고 생활의 여유가 없어 낮시간만 작업하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번역 초고를 읽으면서 내용을 검토면 되지만 재번역을 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덕분에 많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3백년 전의 수도생활의 단면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언제 끝날지 기간이 명확하지 않은 일입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걸리고, 아주 작은 부분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일입니다. 상당한 압박감을 받고 있습니다. 마음을 느긋하게 먹기로 했습니다. 마감일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누가 다그치지도 않고, 하면 좋고 해야 하는 일이지만 안해도 괜찮은, 지금까지 번역된 편지 없이도 잘 살아왔다는 것을 기억하곤 합니다. 어려운 부분이 많은데, 그것은 제 실력이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실력없음은 시간으로 보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일을 하면서 머릿속으로는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겨울산 겨울숲 그리고 침묵'에 대해 뭔가 써보려고 합니다. 주로 산책할 때 글의 얼개와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많이 생각합니다. 겨울산과 숲과 침묵에 관해 블로그에 저장되어 있는 단편적인 글들이 많아, 이것을 정리하면 될 것아 마음의 부담은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한 번에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한 번에 한 가지 일만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번에 여러가지 일을 한다고 해서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있을 뿐입니다. 한 번에 한 가지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은 한 가지 일을 마친 다음에 다른 일을 시작하는 사람입니다. 일에 대한 몰입도가 높아 빨리 끝내고 다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한 번에 여러가지 일을 하는 사람과 똑같은 양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